2014. 1. 14. 02:14ㆍShared Fantasy/Paper
패션, 푸드, 아트 등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를 소개하는 라이프스타일 계간지 아카이브 저널(Archive Journal)은 인터뷰를 통해 작품 및 제품이 태어나는 곳의 히스토리, 문화, 철학 등을 소개한다. 아카이브 저널 창간 소식을 소개하고 첫 번째 호 후기를 쓰면서 본 지 편집장님과 연이 닿았다. 그러던 차에 편집장님께서 두 번째 호에 실을 칼럼 제안을 주셨고 기쁘게 두 번째 호 주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인터뷰이와의 인터뷰도 함께 맡게 되었다. 이 포스팅을 비뤄 학생이란 핑계로 게으름 피우던 내게 멋진 기회 주신 현국님과 함께 한 인터뷰이 장콸언니에게 감사하단 말 전한다.
아카이브 저널 두 번째 호 주제는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다. 19세기 영국, 고딕 문학이 공포 영화로 발전해 크게 유행했을 때 등장한 호러 영화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영화 분위기와 어울리게 아카이브 저널 이번 호는 고딕, 뱀파이어 등 블랙을 이미지화했다. 고딕 다크웨어 패션 디자이너 김선욱의 딤 레더(Dim Leather), 그로데스크한 일러스트레이터 장콸(Jangkoal), 주 파스타(Joo Pasta)의 블랙푸드 등등. 고딕, 블랙과 연상되는 컨텐츠들이 소개되며 더해 영국에서 시작되어 현재까지 계승되고 있는 고딕 문화를 정리한 Succession of Death 칼럼이 실렸다.
메이든 느와르(Maiden Noir)에서 흑백영화라는 뜻의 느와르(Noir)가 의미하는 것처럼 나는 검정을 가장 좋아한다. 검정이라고 해서 무섭고 어두운 느낌보다 차분하고 정리된 이미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검정을 이미지화한 아카이브 저널 이번 호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거 같다. 우연히도 2013년 초, 고딕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공부한 덕분에 이번 칼럼 제의는 어느 때보다 반가웠고 쓰면서도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 더불어 장콸언니와 사적인 친분이 아닌 인터뷰이, 인터뷰어로 2년 만에 마주할 수 있어 감회가 새롭다. 편한 사람들과 함께 알찬 컨텐츠 만들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
아카이브 저널 두 번째 호에는 인터뷰이 스테레오 바이닐 컬렉션(Stereo Vinyl Collection)과 협업으로 제작한 반다나가 함께 동봉된다.
[장콸 인터뷰 전문]
우리는 아주 오래전 컴퓨터를 통해 처음으로 마주했다. '일촌'이라는 고리 덕분에 낯설고 어색하지만 은근히 끈끈하게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다 2011년 모 매체 인터뷰를 계기로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실제 만남을 가졌다. 서로의 취향을 몰라 아무 데나 향한 곳이 구수한 시골 부대찌개 집이었다. 인터뷰는 부대찌개 버너에 불을 붙이며 시작해 후식으로 마신 사이다가 동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후 우리는 틈만 나면 만나서 수다를 떠는 친한 언니 동생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2013년 끝자락, 우리는 '아카이브 저널' 덕분에 인터뷰이와 인터뷰어로 다시 마주했다.
개인적으로 친한 우리가 매체 인터뷰를 통해 마주한 지는 2년 만이다. 응해줘서 고맙다. 인터뷰 때마다 비슷한 질문을 받을 텐데 그래서 오늘은 다른 차원의 질문을 준비했다. 누구나 다 아는 인터뷰는 지양해보자. 자신만을 소개하는 독특한 방법이나 멘트, 어구가 있다면? 사용해서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 바란다.
A) 안녕하세요. '그림 그리는 사람 장콸입니다'라고 소개한다.
장콸이 코알라를 닮아서 지어진 이름으로 안다. 코알라를 좋아하기도 하는가? 코알라 그리는 그림은 많이 보지 못했다.
테가 두꺼운 뿔테안경을 끼고 다닐 적이 있었다. 거울을 보니 코알라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스스로 붙여준 별명이다. 코알라를 좋아한다. 강아지도 좋아하고 고양이도 좋아하고 치킨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과 그리고 싶은 그림은 별개다. 그래서 코알라를 그린 적은 없다. (치킨도 물론이고.)
요즘 SNS를 보니 작품 성향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변화를 시도 중인가? 구체적으로 어땠는데 어떻게 변하고 싶은가?
주로 냉소적이거나, 불안한 표정의 여자 인물을 그려왔다. 만화를 그리는 싶다는 욕망을 실행하려니까, 캐릭터의 성격까지 잡아뒀는데 그것을 미묘한 표정의 변화로 표현하려니 어려움이 있었다. '나' 자체가 풍부한 표정을 지닌 사람이 아니라 거울을 봐도 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사람이 많은 장소에 자리를 잡고 몰래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한다. 캐릭터의 성격에 맞춰 미묘한 감정변화부터 표현할 수 있어야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발화할 수 있을 것 같다. 공부 중이다.
섹슈얼하고 자극적인 그림으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소스를 배제하고 싶다는 희망을 SNS에 비춘 적이 있다. 생각을 바꾼 계기가 있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다. 그것을 깨닫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섹슈얼하고 자극적인 그림들은 나를 표현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야한 것을 그리는것이 얌전한 내 일상속 반항 중 하나였다. 현재는 자신을 옥죄지 않으니 반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내가 미워하는 것들, 나를 주체로 하는 모든 것들을 표현한다.
오랜 기간 다작을 준비해 온 걸로 안다. 아직 개인전에서 펼치지 않는 이유가 있나? 소망하는 개인전 형태가 있는가?
'내 마음에 들도록 잘 그리고 싶다'는 욕심이 커서 성인이 된 후로 몇 년째 습작뿐이라고 생각한다. 작품이라고 내놓을 만한 것을 아직 만들어내지 못했다. 작품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꾸준히 습작이라고 생각하며 연습한다. 그리고 작품이라고 자부할만한 그림들이 모이면 그때 전시를 할 계획이다.
어떤 사람들이 장콸 그림을 봐줬으면 좋겠나?
다양한 사람들이 봐주면 좋다. 그리고 좋아해 주면 좋다. 싫어하는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는다. 개인 취향의 차이니까.
주로 디지털로 작업하는 걸로 안다. 캔버스 작업은 왜 안 하는가?
“왜 캔버스에 작업하지 않느냐, 화가가 아니냐?” 라고 추궁받는 것 같아서 당황스러운 질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어떤 툴을 사용하는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종이에도 그리고 인형에도 그리고 나무에도 그리고 컴퓨터로도 그리고 캔버스에 그리고 싶으면 붓도 잡는다. 구별하지 않는다.
이제는 개인적인 질문들을 좀 해보고 싶다. 바비인형 수집이나 동물 그림 가방, 지갑 등 어린아이들과 공감할만한 취향을 지녔다. 일반인들은 쉽게 지니고 다닐 수 없는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장콸의 작품 성향이 그런 취향을 커버해준다고 생각한다. 혹시 더 나이가 들어도 취향을 고집할 수 있겠는가?
오랜 시간 파도에 바위가 깎여 바위 모양이 변하듯. 취향이란 것도 긴 시간 동안 서서히 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여운 것들은 누구나 좋아한다. 기준이 다른 것이다. 누구는 거미를 보고 귀엽다고 할 수도 있고, 뱀을 보고 귀엽다고 할 수도 있다. 언젠가는 뱀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지, 그렇다면 당연히 뱀을 키우거나 뱀이 그려진 옷을 입고 다닐 것이다. 취향은 존중받지 않아도 되나, 그렇다고 남이 멸시할 권한도 없다. 취향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신한다는 점에서 이로운 고집이다.
장콸의 바비인형들 잘 지내는가. 언제부터 왜 모으기 시작했나.
잘 지낸다. 외롭지 않게 짝도 지어주고 애기도 있고 친구들도 많다. 바비도 있고 쥬쥬도 있고 미미도 있다. 늘씬한 여자 인형을 통틀어 ‘마론 인형’이라고 부른다. (마론은 바비인형이 출시될 당시의 미스유니버스 이름이다.) 그림 그리는 취미 외에도 책상에 얌전히 앉아서 꼼지락 꼼지락 할 수 있는 취미를 갖고 싶었다. 취미를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다. 그중 가장 적합했던 것이 마론 인형 커스텀이었다. 모은다기보다 커스텀하는 것이다. 인형의 얼굴을 지우고, 머리카락을 모두 제거하고 다시 한 올 한 올 머리카락을 심고, 새로 얼굴도 그려준다. 한 인형당 5시간은 기본으로 소모한다. 눈도 침침하고 손가락도 아파서 마론 인형 커스텀은 미뤘다. 머리카락 이식의 고됨을 망각할 때쯤에 다시 인형을 잡지 않을까 싶다.
남자친구와 함께 듣는 음악이 있다면? 둘 사이의 특별한 음악 한 곡을 추천해달라.
Patience and Prudence - Tonight You Belong To Me
활발한 SNS 활동이 작업 활동에도 영향을 끼치는가?
작업에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휴식하는 방법의 하나다.
재밌는 질문이다. 장콸 작가의 이미지와 작품 성향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일상에선 주방에서 음식물쓰레기도 버리고 하는가? 어떤가?
요리도 잘하고 청소도 잘한다.
아카이브 저널 이번 호 주제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다. 공포영화 좋아하는가?
손으로 눈 가리고 손가락 사이로 꼭 보고야 마는 사람이다. 좋아한다.
평소 장콸의 검정 옷과 하얀 얼굴 이미지가 사뭇 뱀파이어도 연상시킨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운치 않게 들었다.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답다는 얘기일터니. 태국여행 다녀온 후로 피부가 좀 까매졌다. 원상복귀 시키려 노력 중이다.
핑크 공주는 어떤가?
스몰사이즈 체격이었다면 핑크키티공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장콸의 발전 성향에 대해 꿈꿔본다면 어떻게 펼쳐졌으면 하는가? 판타지다워도 좋다.
일상을 순결하고 순수한 백지 안으로 끌어들이고, 모든 일상의 형태가 깨끗한 내 속으로 들어오길 바란다. 선 하나도 화가가 그리면 작품이 된다. 선 하나가 작품으로 변화는 과정 자체를 탐구하는 것이 내가 규정한 그림 그리는 삶의 방향이다.
[고딕 문화 칼럼 '죽음의 계승_Succession of Death' 전문]
‘대영제국’이라 불리며 경제적 번영과 국가적 전성을 누렸던 19세기 영국은 세계의 중심에서 산업혁명을 이끌기도 했다. 국가의 전성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 영국에서는 공포, 죽음이 연상되는 고딕 문화가 번성했다. 당시 영국인들은 산업혁명과 동시에 종교적, 도덕적 절제를 요구하던 억눌린 사회 분위기에 반항하며 인간욕망의 자유를 고딕 문화로 표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고딕 문화는 당시 빅토리아 여왕의 검정 옷과 맞물려 어두운 이미지를 더욱 짙게 했다. 대영제국으로 이끈 영웅, 빅토리아 여왕은 당시 사랑했던 부군, 앨버트 공을 잃고 1861년부터 죽을 때까지 40여 년간 검정 옷만 입으며 미망인으로 살았다. 이 때문에 점차 대중들도 검정 옷을 입기 시작했고 더해 공포, 어둠, 죽음 같은 이미지의 고딕 문학들이 유행하기도 했다. 이는 19세기에 고딕 문화가 얼마나 번성했는지 가늠하게 한다.
20세기 초에는 고딕 문학의 공포 요소를 소재로 활용한 고딕 시네마가 활기를 띄었다. 아카이브 저널 이번 호 주제인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1922> 그리고 <드라큘라, 1927>, <프랑켄슈타인, 1931>과 같은 공상물을 차용한 영화들이 무성, 유성을 가리지 않고 전성기를 맞았다. 시대가 거듭될수록 고딕 문화는 그 뿌리를 더욱 탄탄히 해 나갔고 1970년대까지 영향을 끼친다.
1970년대 펑크가 허무주의에 빠지면서 특히 검은색에 집착했던 무리, 고스룩의 패션 트라이브가 등장했다. 검정 옷과 검정 머리 염색, 창백한 하얀 피부, 검정과 같은 립스틱까지 유행과 상관없이 그들만의 직업과 공간에서 폐쇄적인 생활을 유지했다. 또한 그들은 종말론, 신비주의적인 가사와 음울한 저음 보컬이 돋보이는 고스 락을 모태로 발전했다. 이와 같이 고딕 양식은 고스 스타일이나 고스 락으로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계승되고 있으며 100년도 더 이어져 내려오는 문화 양식이다.
과연 놀라운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죽음, 영적인 것과 연상되는 저승사자, 꽃상여 등을 패션이나 음악에 접목시킨다는 것은 아무리 상상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니 말이다. 사람과 필연적인 죽음, 공포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로 차용되었다는 점, 몇 세기에 걸쳐 시대 적응 형으로 발전해 왔다는 점. 이 두 가지를 미뤄봤을 때 고딕 문화는 소수에 의해 재현되는 반면 그 가치가 단순히 패션 스타일의 하나, 음악 장르의 하나로 치부될 수 없다. 예컨대 몇 십 년, 몇 백 년 후에 누군가 21세기 고스 스타일을 따르고 있을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글 : 임예성, 사진 : 임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