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22. 22:28ㆍShared Fantasy/Paper
가까운 6개월 동안 내 신경을 가장 쏟아부었던 건 향이었다. 종강도 있었고 개강도 있었으며 공모전에 일본여행까지 다녀온 6개월이었지만, 그 안에 내 관심사, 해야할 일 모든 게 향과 관련되어 있었다. 여행에서 향을 잔뜩 사오는 것도 모자라 디퓨저에 캔들까지 관련 소모품을 사들이고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개강 이후에도 메이든 느와르 캔들 때문에 새로운 향 배합은 물론 계속 계속 다른 브랜드 캔들 향 맡아보고 사들이는 데에 오롯이 내 시간과 정신을 쏟았다.
여행에서 신년을 맞이하고 돌아오자마자 늘 그래왔듯이 1월의 잡지 쇼핑을 시작했다. 새로 발견한 냄새 잡지 (?) 센트. 향을 다룬 전문적인 잡지는 접해본 적도 없거니와 독립출판물이더라도 향을 이미지화한다는 컨셉이 무척 흥미로웠다. 현재 내 주변의 것들이 전부 향향향 이어서 더더욱 관심 갔던 것도 있을테고. 신기하게 봉투 열자마자 황홀하리만큼 좋은 냄새를 뿜어대는 잡지 센트(Scent)를 소개한다.
2014년 첫 번째 호를 발간한 매거진 센트는 김다혜, 박소현, 장혜진, 조은정 네 명이서 소규모 출판물로 기획했으며 유어마인드, 스토리지북앤필름, 헬로인디북스 등에서 판매중이다.
센트는 향기, 냄새라는 뜻으로 우리 감각 중에 가장 오래 기억되는 후각과 연관있는 단어다. 센트는 개개인의 가치가 만든 특별한 냄새를 담아 누군가의 가슴 속에 오래 기억되기를 바라는 취지로 누군가의 잠든 코를, 눈을 그리고 마음을 깨무는 냄새를 추구한다.
'반하다' 인터뷰, '취하다' 화보, '스며들다' 글, '맡아보세요' 향이 담긴 페이지 등으로 구성된다. 후각을 주제로 한 매거진 컨셉답게 '맡아보세요' 페이지에서는 실제로 향수 '에따 리브로 도랑주(Etat libre d'Orange)'의 '푸떵 데 팔라스(Putain des Palaces)'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 페이지에서 발향도가 가장 높지만 잡지 전체는 물론, 잡지가 담기는 지퍼백만 열어도 맡을 수 있다. 실로 봉투를 열어둔 내 책상은 살짝살짝 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 정도다. 스쳐만 가도 나는 냄새 덕분에 여러 번 되짚어 보게 되는 마성의 잡지.
조개 사진과 함께 야릇하게 적힌 '속~살'처럼 센트 첫 번째 호는 늘 우리 안에 또는 곁에 머물러 있지만 정작 어떤 냄새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살 냄새를 주제로 한다. 살을 마주하는 공간부터 속살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살과 냄새를 담았다. 위트있게 풀어낸 살의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그 외에도 자극적인 비주얼의 '정육점의 비밀', 푸근한 '중앙탕' 등 향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재미있는 비주얼로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호에 담긴 향 스토리도 무척이나 흥미롭다. 위 사진의 '맡아보세요' 페이지에서 가장 진향을 맡을 수 있다. "부드러운 립스틱 자국, 레이스의 바스락거림, 남자의 깨지기 쉬운 갑옷을 꿰뚫어 보는 팜므파탈의 성적 습관. 하나의 방, 인조가죽 소파 위에 조여오는 손가락과 뚜렷한 원초적인 욕망의 존재" 에따 리브로 도랑주 공식 홈페이지에 소개된 글이라고 한다. 읽고 나서 맡으면 야릇한 상상이 함께 떠오를 수밖에 없다. 냄새를 이용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이 이런 걸까. 거창한 것도, 전문적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명분은 향 관련 무엇을 하는 사람에게 신기하고 신비롭게 다가오는 냄새나는 잡지, 센트.
글 : 임예성, 사진 : 임예성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