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12. 00:56ㆍShared Fantasy/Culture
영화는 잠시 쉬어가고 싶은 우리에게 꿀같은 피로회복제가 된다. 사회에 찌든 우리는 머리가 아플 때 '현실 도피'를 자처하며 영화관람을 택한다. 영화 러닝타임 두시간 동안은 영화에 빠져 현실의 그것들을 깡그리 잊으니 말이다. 영화처럼 깔끔하고 짧으며 유용한 쾌락재가 또 어딨을까 싶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황금이 넘치는 '노다지' 같은 한국영상자료원을 소개한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무료로 영화상영이 가능한 시네마테크(KOFA)를 운영중이다. 국내 고전영화 뿐 아니라 해외 고전 및 예술영화까지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테크(KOFA)는 기존의 '시사실'이라는 낡은 이미지를 탈피하여, 다양한 영상문화를 통해 국내 시네마테크를 선도한다. 2002년부터 시네마테크는 쉬지 않고 새로운 주제와 컨셉으로 몇몇 영화를 선정해 프로그램으로 선보이고 있다. 길게는 한 달, 짧게는 하루 단편 하나를 상영할 때도 있다.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400에 위치한 시네마테크를 찾아가면 언제든 자체 상영 프로그램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2013년 8월 시네마테크 KOFA에서 어쩌면 '역사'라는 이름으로 박제되고 있을지도 모를 지나간 시간과 증언들을 기록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2002년 세상을 떠난 재일 역사학자 신기수가 제작한 '해방의 그 날까지'는 일본 식민지배라는 치욕의 역사 속에 형성된 '재일교포'의 존재와 그들이 겪어야 했던 고난, 그리고 스스로의 인권과 민족의 해방을 위해 일제에 맞서 전개해왔던 투쟁의 과정을 당시의 구체적인 자료와 체험자의 증언을 통해 영상화한 작품이다.
기록을 시작한 70년대, 이미 많은 경험자들이 세상을 떠났기에 생존자들을 찾는 것에서부터 어려움이 따랐던 이 지난 작업은 인터뷰에만 장장 4년의 시간이 소요됐고 그렇게 모여진 방대한 자료는 최종적으로 195분의 시간에 압축적으로 담겨졌다. 그 시간 속에는 1910년대 시작되는 재일 유학생의 민족운동부터 1922년 니이가타현 나카쓰가와 수력발전소 공사현장에서 자행된 조선인 노동자 학살사건으로 촉발된 항의운동, 1930년 기사와타 방적공장의 조선인, 일본인 여성 노동자의 공동투쟁 등 주요한 사건들과 1945년 8월 15일 마침내 해방을 맞는 그 날까지의 기록이 당시 신문자료와 영상자료, 그리고 생존자의 인터뷰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해방의 그 날까지' 와 함께 만나게 될 또 다른 작품, 끌로드 란츠만의 '쇼아'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 없는 작품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 의해 자행됐던 유태인 대학살이라는 지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증언만으로 채워진 장장 9시간30분간의 기록. 11년간의 제작기간을 거쳐 1985년 완성된 '쇼아'와 1980년 완성된 '해방의 그 날까지' 이 두 편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과거의 시간과 기억이 일본과 독일, 재일조선인과 유태인, 동양과 서양이라는 어떤 특정한 지역, 특정한 시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해방의 그 날까지' 상영 후에는 '안녕 사요나라'의 김태일 감독 등이 참여한 대담과 故 신기수의 유가족들의 인사가, '쇼아' 상영 후에는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저술한 이상빈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특별한 강연의 자리도 마련될 예정이다.
글 : 임예성 (한국영상자료원 소개글 인용) / 이미지 : 한국영상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