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7. 00:12ㆍShared Fantasy/Life
가끔 사물을 바라볼 때면 이것이 어떤 곳에서 누구의 손길을 거쳐 여기에 도달 했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관찰자에게는 늘 결과물만이 주어질 뿐이기에, 그것이 거치는 공간과 과정은 묵묵히 숨겨진다. 그 가리어진 영역이 궁금하여 빠금히 장막사이를 들추었다. 영감과 열정이 묵직이 어린 공간들, 그리고 그 속 사람들을 담았다.
홍석우
항상 바쁜 가로수길 뒤로 주택지구와 상업지구가 맞물리는 그 어디쯤, 홍석우가 각별한 사진과 글들을 만드는 공간이 있다. 스스로를 활자 중독이라 일컫는 홍석우의 작업실에는 빼곡하게 책과 서류들이 채워져 있다. 이 꽉꽉 들어찬 공간에서 홍석우는 많은 글을 읽고 쓰며, 많은 사진들에서 인상을 얻어서 다시 사진으로 풀어낸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쉽게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홍석우의 욕심은 이 공간에서 글과 사진으로 온화하게 변모한다.
늘 확고한 영역을 견지해 왔기에 홍석우는 어느새 확고한 실력자로 거리에 섰다. yourboyhood의 사진들은 보고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한번 더 보게 되는 매력을 갖고 있고,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그의 글들은 늘 "참 잘한다"란 경탄을 이끌어낸다.
신재혁
이태원 4번 출구 뒷골목으로 들어서면 할아버지들이 대문 앞에 앉아 부채질하시는 여유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작은 떢볶이 가게와 구멍가게를 지나치면 트럼프 카드의 킹이 그려진 독특한 공간 'Peu a Peu' 쇼룸을 만날 수 있다. 이 쇼룸에는 가지각색 패턴과 팝아트적인 컬러가 돋보이는 자켓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단조롭고 지루할 수 있는 클래식 복식에 컬러와 원단으로 포인트를 줘 새로운 감각의 자켓을 만나볼 수 있다.
신재혁은 이 공간에서 찾아주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독창적인 옷들을 제시하며, 그들과 대화하고 꼭 어울릴 각별한 옷을 선보인다. 감탄할 만큼의 독특한 감성으로 표현하는 신재혁의 옷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이 먼저 찾는다. 신재혁은 조금씩, 서서히 라는 뜻의 Peu a Peu 같이 한정 생산을 통해 손님과 천천히 그리고 오래 소통하고자 한다.
한예롤
노을에 젖어 색이 바랜 풍경이 창가에 펼쳐져 있다. 한예롤의 공간 '아뜰롤리에'는 보광동의 조용하고 오래된 언덕 사이에 숨어있다. 30년 동안 피아노 학원이었던 곳이 아티스트 한예롤의 손을 거쳐 우쿨렐레, 이젤, 축음이가 어우러지는 독특하고 섬세한 공간으로 탈바꿈햇다. 벽면의 프로젝터를 통해 흘러나오는 흐릿한 영상, 가구처럼 공간을 채우고 공간을 편히 보조하는 음악, 그 품에서 한예롤은 그림을 그린다. 이 충만한 공간에서 한예롤은 여백이 주는 막막함을 조금씩 채워나간다.
아뜰롤리에에서 아이들과 함꼐하는 한예롤은 어린 아이들의 그림과 소통하며 그들의 감성에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의 순수하고 깨끗한 감성 그대로 한예롤의 글미은 티 없이 맑다. 울고 싶으면 울고 싶은 그대로를 표현하며 늘 감성에 충실하다. 어린 친구들을 가르치기보다 그들에게서 더 많은 걸 배운다는 한예롤. 그녀의 맑은 그림은 생기 넘치는 아뜰롤리에에서 그려진다.
방영민
산울림 소극장 언저리, 기타를 아끼고 사랑하는 방영민을 만날 수 있는 기타 가게가 있다. 방영민은 이곳에서 종일 기타를 조율하고, 만지며 매무새를 정리한다. 좁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늘 기타소리가 울려 결코 좁게 느껴지지 않는다.
명료한 기타 톤은 역시 연주자의 역랑에 준하긴 한다만, 그의 손에 들린 기타에도 분명한 영향을 받는다.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지만, 명 기타리스트에겐 역시 좋은 기타가 들려 있어야 한다. 방영민은 기타의 수명과 연주 전 악기의 상태를 관리하는 의사다. 스스로가 오랫동안 음악을 이어왔기에 기타를 치는 사람의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그 마음을 담아 우직한 손으로 기타들을 매만진다. 그의 손을 거친 기타들은 많은 기타리스트들의 손에 들려 다양한 소리들을 연주하고 있다.
이중민
종로 거리의 왁자지껄함이 닿지 않는 조용한 곳에 Alnis의 쇼룸 겸 작업실이 있다. Alnis는 한 명 한 명의 체형에 맞춰 제작되는 맞춤 정장이다. 단 하나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이중민의 Alnis를 찾는다. Alnis의 쇼룸은 종로 거리의 부산함과 등지고 있다. 기성복의 간단하고 빠름보다 맞춤복의 느림과 꼼꼼함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찾는 공간 그대로다.
이중민을 찾는 사람들의 몸을 신중하게 기록하고, 사람들의 의견과 자신의 조언을 담아 세상 단 하나뿐인 옷을 만든다. 신중하고 세심하게, 그리고 찾는 이가 원하는 그대로, 젊은이 이중민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노숙한 태도로 한 번 한 벌에 정성을 쏟고 심혈을 기울인다. 쉽지 않은 과정으로 만들어진 정장은 누군가의 몸에 담긴 체 조용한 작업실을 떠나 왁자지껄한 거리로 나선다.
황재국
각별한 LP들, 세계를 떠돌면 LP들은 홍대 동교동 언저리 Henz Shop에 고스란히 모여있다. Henz Shop의 옷들에게 주인 자리를 내줄 수 밖에 없지만 귀중한 둥근 몸은 정사각형 얼굴에 몸을 숨긴채 진짜 LP의 가치를 알아줄 주인을 기다린다.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디제이 문화를 좋아하는 국내 마니아층을 중심으로 LP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희소성을 가진 명반 LP의 가치 또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Henz Shop의 황재국은 비닐 탐닉가며, 음악중계자다. LP들은 황재국의 정성스런 보살핌으로 Henz Shop에 자리 잡았다.
Orchid Red
홍대 시끄러운 골목 끝자락 붐비는 고깃집 사이 골목에 그녀의 빌라가 있다. 아티스트 오키드 레드의 작업실 임을 멀리서부터 알아차릴 수 있게 창문 밖으로 세어나오는 분홍색 조명.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발 내딛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어느 모로 보아도 그녀의 풍경이다. 주방은 빨간 조명, 방은 파란 조명 등 가지각색의 조명으로 막 나가는 정신 세계를 담았고, 그것은 그녀의 작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 그것과 교묘하게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압도적인 오브제들. 그녀는 여러 사람이 오가며 함께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 조만간 이 공간을 공개할 예정이다. 과연...
그녀를 오롯이 담았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건데, 그녀답기에 좋다. 그녀의 작품은 연출이 없다. 오키드 레드의 일상, 공간, 생각 들이다. 다름이 없고, 꾸미지도, 더하지도 않았다. 오키드 레드만의 공간에서 오키드 레드만의 작품이 탄생된다.
신정혁
작업이 한참인 시간에 다짜고짜 찾아 갔지만, 가지런히 정리된 공구를 보며 이곳의 성격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고, 어떠한 물건들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간명한 작업실에서 나오는 명료한 가구, 'Hollain'의 독특한 아웃도어 라이프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목재를 다루는 일은 일견 거칠고 야성적인 노동이 것 같지만, 사실 꼼꼼하고 섬세한 창조 작업이다. 작은 의자 하나에도 속 깊은 사유들과 정밀한 기교가 담겨있다. 파지 하나 하나의 쓰임, 쓰는 사람의 편의, 그리고 그들의 취향. 신정혁은 'Hollain'을 통해 정성과 관심을 풍성하게 담아 목제품을 만든다. 그리고 작업 공간에는 그런 고민과 온유한 마음들이 가득 담겨있다.
서지은, 정지윤
서교동에는 걷고 싶은 거리가 있고, 상수동에는 주차장 길이 있다. 사람들에게 걷고 싶은 거리가 걷기 싫어진 지는 오래되었고 이름만 들으면 매연 천국 이미지의 주차장 길에 사람이 몰린지 꽤 되었다. 하지만 고고한 섬처럼 햇볕을 전부 흡수하는 투명 유리 건물이 있으니 3층에는 동갑내기 디자이너 서지은과 정지윤의 작업실이 있다. 투명한 건물, 하얀 계단, 하얀 문, 그 앞 미스치프 입간판이 세워져있다.
두 여자는 90년대 문화에 기반을 두고 Vintage Athletic Casual의 아날로그 감성을 옷과 소품에 풀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작업실에 들어서면 90년대 소울 음악이 흘러나오고 벽 전면에 90년대 힙합, 농구 등 그 시대의 것들이 수북하게 채워져 있다. 서로 닮은 동갑내기 두 디자이너는 이 공간에서 어려서부터 그래왔듯 함께 작업하며 미스치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신형수
신형수의 작업실에는 어둠과 묵직함이 가득 담겨있다. 이곳은 그의 브랜드 "Sheen 666"의 작품 하나 하나에 혼을 불어넣는 대장간이다. 작업실 한쪽에서 몸을 구부리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신형수의 뒷모습에선 그의 세공품들에서 느껴지는 차갑고 묵직한 아우라가 묻어 나온다.
어두운 작업실 작은 의자에 앉은 신형수는 강한 눈빛과 어두운 혼으로 날카롭고 예리하게 피조물을 깎아내고, 형체를 찾아가는 피조물은 그런 대장간 주인을 닮아가며 서서히 완성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 같다.
작가와 작품의 모습은 다른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그것들이 탄생하고 그들이 숨 쉬며 작업하는 공간은 구경할 수 없었다. 쉽게 볼 수 없어 궁금했던 작업실 풍경, 작가와 작품이 공존하는 작업실이야 말로 그 사람의 취향과 인상을 가장 손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다. 공간의 분위기, 앉은 자리가 사람 감성과 마음가짐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작가가 작업할 때 가장 편해지는 공간을 연출 없이 자연스럽게 담았다. 멋진 사람들의 멋진 공간이 멋진 작품을 낳는다.
글 : 임예성 사진 : 임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