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9. 12:23ㆍShared Fantasy/Fashion
1. 하퍼스 바자 1월호에 언급된 “스트리트 사진가”
주말의 끝자락은 언제나 '여유'를 희망한다. 집 앞 카페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커피 한잔이나, 집에서 저녁 식사를 소화하며 보는 영화 한 편 혹은 책 한 권의 여유 말이다. 예고된 쓰나미처럼 천연덕스럽게 돌아오는 월요일은 우리의 일요일 밤을 혼동케 한다. 내 안에서 짜증, 불안, 절망 그 부정적인 모든 것을 결합하는 악스러운(↔성스러운) 시간이라고나 할까. 읽으려고 마음먹고 쌓아둔 책과 잡지가 산더미였다. 책상만 보아도 괜히 뿌듯해질 만큼 읽을거리가 넘쳤다.
그런데 왜인지 책을 펴도 읽히지가 않는다. 아마 월요일의 막막함 때문이겠지. 하퍼스 바자 1월호를 폈고, 읽기보다는 보기 위주로 책장을 넘기다가 <이름 없는 옷>이라는 큰 서체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최근 쇼장 앞에는 블로거의 스트릿 사진에 찍히기 위해 키 피스로 도배한 옷을 입고 등장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 중 쇼장 앞에서 받는 주목도 만큼이나 실제로 영향력 있는 패션 프레스와 바이어가 몇이나 될지 궁금하다.
이들 중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십 명의 사진가들에게 촬영을 '당할'뿐 알고 보면 막상 쇼에 초대받지 못한 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일부는 브랜드에서 섭외해 옷을 입혀준 전문 모델이기도 하고, 일부는 그저 관심병에 걸린 일반인들이다.
최근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부작용으로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너무 강해 입은 이의 퍼스널 스타일이 드러나지 않는 옷에 신물을 느끼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 From Harper's Bazaar January 2013 <이름 없는 옷> 중 일부
2. 패션을 ‘만드는’ 사람, ‘이용하는’ 사람
이 주제에 관한 내 생각을 꼭 한번 정리해야겠다 싶었는데 하퍼스 바자에서 아주 유쾌하고 한편으론 잔인하게 묘사해줘서 도배를 무릎 쓰고 트위터에 옮겨 적었다.
관련해서 내 생각은 이러하다. 패션을 만드는 사람은 렌즈 안에 담기기보다 렌즈를 이용할 줄 아는 이가 더 가깝다. 옷, 스타일, 트렌드를 이끄는 주체에게 일상에서 입는 리얼 패션은 옵션일 뿐, 그것을 활용하는 객체는 그것들이 만들어지는 데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패션을 트렌드와 관련해 공급(트렌드를 만드는 업계 관련 직종), 수요(공급을 흡수해서 발생하는 트렌드와 활용하는 패션 피플 등) 관계로 미뤄 봤을 때 공급의 수는 현저하게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 힘이 수요의 영향은 크게 받지 않을 만큼 중대하다.
단지 패션을 사랑하는 스트리트 피플 이라기에는 그 취지와 영향을 이용하는 객체들이 더 많은 것도 사실이다. 언제까지 리얼웨이, 순수한 스트릿 포토일 수는 없지만, 그 취지만큼은 변질하지 말아야 함이 분명하다.
위 내용과 관련해 스트리트 사진가 김예숙(@looksook_)과 트위터 멘션으로 주고 받았던 담화를 정리해본다. 에디터와 김예숙은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사진가의 생각 그대로를 담기 위해 가공 없이 적는다.
에디터 (임예성 @maidennoirr) ㅡ> 사진가 (김예숙 @looksook_)
예전 스콧슈만이 서울 촬영할 때, 그 렌즈 피사체가 되기 위해 풀착장하고 근처를 배회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검색어까지 오를 정도로 이슈가 됐었는데요. 그게 과연 스콧슈만이 스트리트 패션을 담은 건지, 준비된 스타일링의 사람들을 담은 건지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결론은 확실히 스트리트 사진가가 감별력 있게 "준비되지 않은, 진짜 일상 패션, 우연히 만난" 사람을 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얼마 전에는 모델 한 분(익명)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역시나 서울 패션 위크 기간에 누군가 자기를 촬영해주길 갈망하며 의도적으로 풀착장하고 나갔지만 아무도 촬영해주지 않아 실망스러웠다고까지 하더군요. 그 모델 언니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찍혀야 했을까 안쓰러웠어요.
게다가 요즘 들어 그렇게 스트리트 포토에 찍혀 자신의 이미지 축적에 힘쓰는 사람들은 그 취지가 고약해서라도 스트리트 사진가들이 감별해줬으면 좋겠지만... 사진가들에게 의도적이든, 아니든 멋지게 입은 사람이라면 반가운 건 사실이겠죠?
3. 현직 사진가에게 듣는 스트리트 패션 사진 문화
그리고 이에 따른 사진가 김예숙의 의견을 정리한다. 좋은 취지이자 성향임은 확실하고 대게 많은 사진가들이 이런 사고를 전제로 촬영에 임한다는 대목에서 왜인지 든든함과 함께 신뢰도가 급상승하는 것도 사실이다. 멋진 생각과 취지로 몸소 스트리트에 뛰어든 사진가 김예숙의 멘션이다.
사진가 (김예숙 @looksook_) ㅡ> 에디터 (임예성 @maidennoirr)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외모나 브랜드에 연연하고 싶지 않아서 모델분들이나 고가의 명품으로 치장한 사람들을 피해서 촬영하기도 했지. 사실 그 아이템들이 내가 가질 수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저가의 브랜드나 빈티지를 활용해도 충분히 스타일리쉬 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알려주고 싶어서 거리로 나선 점도 있어.
가끔 가로수 길에서 촬영하다 보면 사진가를 의식하면서 걷는 분들을 자주 볼 수 있어. 상당히 별로인데다가 우스워. 같이 다니는 사진가 분들은 일단 같은 생각! 패션 위크에 풀착장 그 모델 대충 누군지 알 것 같은데? 하하. 그래도 마냥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기에도 뭐한 것이 스트리트 포토로 이렇게 변화했기 때문에 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의 패션이 상당히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해! 그래서 아직은 나도 즐거움. *^^* 그나저나 내려야 하는데 이거 쓰느라 정거장 지났음.
언젠가는 꼭 한번 사진가 와도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다. 트위터에 게재한 글은 분명 사진가에게 불편한 내용일 수 있지만, 서슴없이 자신의 생각을 언급해준 사진가 김예숙에게 감사한다. 스트리트 사진가를 의식한 패션이 불편한 진실인 것도 맞지만, 결국 그로 인해 서울 스트리트 패션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이 뻔한 결론 뒤에는 김예숙의 '한 정거장 더' 희생이 존재했지만.
스트리트 사진가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스트리트 패션 사진이 주목 받고 있다. “타인의 스타일”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로써 큰 역할을 하는 스트리트 패션 사진 분야의 규모는 짧은 시간에 방대하게 성장했다. 꾸준히 활성화되고 있는 요즘, 분명 장단점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하퍼스 바자가 <이름 없는 옷>을 입어 스트리트 사진가에게 들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그 이면을 처음 들추었고, 쇼프에서 조금 더 심도 있게 다뤄보고자 서울 전역에서 활동하는 스트리트 패션 사진가 00명의 생각을 물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스트리트 사진가, 다양성이나 독창성은 찾아볼 수 없고 하나같이 똑같은 피사체의 스트리트 패션 블로그 그리고 그것의 영향을 이용하려는 피사체들의 의도적인 움직임까지.
사진가에게는 다소 불편한 내용이 될 수 있었던 인터뷰에 응해주신 김예숙님을 포함해 다섯 분께 감사 말씀 전한다. 쇼프 매거진은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이 문제의 양면을 소개하고자 하는 의도다. 이번 피쳐 기사를 통해 스트리트 패션 사진 문화를 한번 더 고찰했으면 하는 바람이고, 이전에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던 문제에 관해 사진가 분들의 생각도 들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어떤 현상에는 그것이 발생되는 이유가 존재하고, 그에 따른 결과도 존재한다. 단지 현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보다 발생 사유에 대한 적절한 이해와 함께 그것에서 파생되는 결과에 따른 관계자들의 책임감이야 말로 어떠한 분야든 현상을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가들의 인터뷰 내용처럼 스트리트 사진가가 급증하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작 몇 해전에 비해 스마트 폰은 우리 곁에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매체를 대변할 만한 사회 문화적 요소가 되었고, 동시에 블로그와 SNS 사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단연 한 지역만을 대표하는 현상이 아니다. 블로그, SNS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작품을 선전하는 1인 매체가 활발해지면서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는 대표적인 분야 패션 관련 블로그가 활성화 되었다. 다양한 컨셉의 패션 블로그가 존재하지만 그 중 가장 주목하고, 활발한 스트리트 사진. 사진을 찍는 이의 수고도 그렇지만, 그걸 필요로 하고 봐주는 방문자들도 이 문화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스트리트 사진 문화는 시기 적절한 발전이자 파생 현상이다.
문화가 활발해지는 데에 따른 문제점들을 언급하고 지적한 하퍼스 바자, 발전 양상과 현직 사진가들의 생각을 정리한 쇼프 매거진 또한 패션 매거진이기에 분명 이 스트리트 사진의 영향권 안에 있음이 확실하다. 어찌 보면 쇼프 매거진에서는 스트리트 사진을 게재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직접적일 수도 있겠다. 다수의 매체에서도 스트리트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스트리트 사진가, 그들의 피사체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의 문제점이 언급 되었다. 언젠가 한번은 언급되었을 문제다. 그 “언제”가 벌써 “지금”이 된 것이다. 말과 글로 왈가왈부 하기 보다 스트리트 사진 문화가 올바르게 양산될 수 있도록 주체와 객체 모두의 인식 재고가 필요하다. 이제 시작인 현상에 대한 거론일수도 있지만, 앞으로 지금보다 더 성장할 문화임이 확실하기에 지금, 더 늦기 전에 정리해본다.
글 : 임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