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OFF] 마릴린 먼로 - 화려한 공인과 비극적 개인

2012. 9. 24. 13:04Shared Fantasy/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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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머리, 천진난만한 순수함,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타이트한 옷 그리고 백치미로 대표되는 여배우. 세기 중반 헐리우드를 대표하는 섹시 아이콘 마릴린 먼로. 만인의 여인이자 20세기 한 시대를 풍미한 마릴린 먼로는 그녀 자체만으로 하나의 문화현상이다. 이런 화려한 겉모습은 마릴린 먼로의 아픔과 고통을 가려주는 장막이 되었다.

 


 

지옥에서 태어난 천국의 육체

 '지옥에서 태어난 천국의 육체'라는 표현이 인용될 정도로 마릴린 먼로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먼로의 어머니 글래디스 펄 베이커는 딸을 낳기도 전에 이미 남자로부터 버림 받았고, 먼로의 어머니를 드나드는 남자들 중 누가 진짜 아버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양부모와 고아원을 전전하며 의붓아버지에게는 성폭행까지 당했다.


고아원에서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웃지도 않으며 혼자만의 고상에 젖기 일쑤였다. 그런 마릴린 먼로는 열세살 학교가던 길 입고있던 옷이 찢어져 어쩔 수 없이 입게된 어린 아이의 스웨터로 그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몸에 맞지 않던 작은 스웨터를 입은 마릴린 먼로를 본 남자 아이들은 금광을 발견한 듯 먼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온 먼로는 마지막 보호자 그레이스 고다르의 주선으로 열여섯살이란 어린 나이에 제임스 도허티와 결혼했다. 그러나 도허티는 해병대에 입대했고 혼자 남은 먼로는 군수공장에서 일하다가 1945년 열아홉살, 군수품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내세운 선전 사진 모델을 시작으로 누드 모델 활동에 전념했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모델 일이 어느새 먼로를 사람들 앞에 내세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군수공장에서 먼로는 스타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남편 도허티는 모델 일을 하찮게 여겼고 이를 트러블로 먼로가 스무살 되던 해 둘은 이혼에 합의했다.

 



사진) 마릴린 먼로의 무명 시절 촬영했던 누드사진

 

마릴린 먼로가 비단 우리가 알고있는 관능적이고 농염한 모습만 소유한 건 아니다.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맑은 모습에서부터 굴곡진 그녀의 삶을 연상케 하는 심각한 표정까지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낼 줄 알던 진짜 배우였다. 자신이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로 어필되는 지를 확실히 캐치하고 보여줄 이미지와 그렇지 않은 것을 직접 구분하여 만들어진 그녀의 이미지는 모두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것들이다. 그녀는 자신의 이미지를 제거하거나 선택하면서 배우로써 입지를 다졌고, 동시에 스스로를 파괴해버렸다.

 

그러나 정작 그녀 자신은 코미디와 사람들 사이에서 부각된 섹시하고 관능적인 이미지를 혐오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생각하는 방식과 그녀가 보는 자신의 이미지 사이에서의 괴리감으로 고통을 호소했다. 결국 본인이 선택해 들어선 길에서 방황했던 것이다. 겉으로 승승장구하던 마릴린 먼로는 늘 파멸에 대한 불안을 떠안고 있었다.

 


 

©Bert Stern - Marilyn Monroe “The Last Sitting”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먼로가 공식적으로 치른 3번의 결혼 중 가장 요란했던 야구 선수 조 디마지오와의 결혼은 대중에게 탑스타끼리의 화려한 스캔들을 선보였으나 헌신적인 배우자를 원하던 조 디마지오 역시 먼로의 스타성에 지쳐 둘은 결국 이혼했다. 세번째 남편 극작가 아서밀러와는 3년 반, 가장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했지만 그 기간에도 프랭크 시내트라, 이브 모땅과 염문을 뿌렸고, 곧 “세상에서 가장 크고 힘있는 남자” 존 F.케네디와 관계를 맺게 된다. 아서밀러와 이혼한 후 마릴린먼로는 존 F.케네디와 더 깊은 관계를 원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은 섹스심벌 배우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존 F.케네디는 먼로에게 싫증을 느껴 동생 로버트 케네디에게 넘겨줬다. 사람을 넘겨준다는 표현도 옳지 않지만 존 F.케네디는 떠넘기듯이 동생에게 먼로를 소개했다. 먼로는 로버트 케네디와도 관계를 맺고 집착했으나 로버트 케네디 또한 형과 같이 반응하지 않았다. 당시 먼로는 미국 대통령 형제에게 처절하게 버려져 씹다 버린 풍선껌이라 불리었다. 여자로써 수치의 극이 아닐 수 없다. 먼로의 사랑과 집착은 결국 먼로 자신을 정신병원으로 이끌었다. 그녀를 거쳐간 수없이 많은 남성들, 그리고 말년에는 즉흥적인 섹스 파트너로 자신을 태우고 온 택시기사와 마저 관계를 맺으며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고 자신의 일생을 고백했다.





남자 혹은 섹스는 먼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그녀에게 이 키워드는 선택의 여지도없이 어린시절 가난함을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동아줄 이었을 것이다그것이 먼로를 시대 아이콘으로 만들었지만 또한 불행하게 만들었다지옥이라 칭할 정도의 불행을 떠안고 태어나 애정을 갈구하며 가난과 맞서야 했다그 가난이 먼로를 카메라 앞으로 이끌었고카메라의 렌즈는 먼로의 특정 한가지 면 만 비추길 원했다마릴린 먼로의 이미지 이면에는 현대사회가 숨기고 싶어하는 상당한 깊이의 문제들이 숨어있다미혼모고아학대노동이혼마약중독 그 모든 것들이 마릴린 먼로의 섹스심벌 이미지 장막으로 덮여 있을 뿐이다.

 

 : 임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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