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샛별 (illust)

2011. 12. 28. 00:25Shared Fantasy/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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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면 The Other Scene
이샛별展 / LISETBYUL / painting 2010_0521 ▶ 2010_0620 / 월요일 휴관

이샛별_가짜왕 lord of misrule_캔버스에 유채_200×300cm_2010

-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이샛별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10_0521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아리랑갤러리ARIRANG GALLERY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483 센텀큐 111Tel. +82.51.731.0373www.arirangmuseum.com

"그문화"에서 전시 동시오픈 (이 문장을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00523b | 이샛별展으로 갑니다.)

흘러내리는 살 ● 이샛별의 작품 속에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하나는 파티용품점에서 구입한 토끼나 여우가면을 쓴 모습으로, 다른 것은 아니무스(animus)를 연상시키는 중성적 존재로서의 자아이다. 이 둘은 거의 대부분 푸른색의 트레이닝 복장을 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두 개의 자아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주체와 작가의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물이자 충동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의미하는 도플갱어(Doppelganger)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같은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도플갱어는 사실 심리적인 분열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징후라고 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인격을 선과 악이란 이분법적인 범주로만 규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라캉의 언어를 빌리자면 상상계의 부분인 자아(ego)와 상징계의 부분인 주체(subject)가 서로 충돌하는 장소로서 신체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완전한 인격이란 사실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인간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다중인격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요인일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샛별의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두 자아는 그가 지닌 많은 자아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면을 쓴 자아는 표정을 감추고 있으나 무언가에 놀란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자화상과 쌍을 이루며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놀란 자아가 바라보는 세상은 한마디로 서사적 구조를 지니지 않는 요지경이자 난장판이며 혼란의 도가니이다.

이샛별_붉은 집 the red house_캔버스에 유채_97×64cm_2010이샛별_붉은 집 the red house_캔버스에 유채_45.5×37.9cm_2010
이샛별_언뜻 보이는 섬광 An Instant Flash_캔버스에 유채_123×180cm_2010

예컨대 서양에서 크리스마스와 같은 축제동안 난장이, 불구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해진 기간에 왕노릇을 하는 풍습으로부터 착안한 작품을 보면 전면에 토끼가면을 쓴 자아가 무릎을 꿇고 있고 맞은편에는 무언가를 집어삼키거나 혹은 뱉어내고 있는 자화상이 나타나고 있다. 화면은 그가 뱉어내고 있는 끈적끈적한 물질에 의해 두 개로 나눠진다. 이 물질은 현실이란 신체 속에서 급격하게 세포분열하며 성장하고 있는 암덩어리, 혼돈과 불안의 잉여물, 역겹도록 꿈틀거리며 증식하고 있는 괴물로서 화면 위를 스멀스멀 점유하고 있다. 연극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조명을 받고 있는 자화상 뒤로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에 대응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루이14세를 연상시키는 기마상이 역시 젤라틴덩어리처럼 흘러내리는 형상으로 재현돼 있다. 녹색 잔디와 가지가 앙상한 나무는 화면 중앙에 뚫린 터널과도 같은 구조물에 의해 불길함을 고조시키지만 그 가운데 느닷없이 스트립쇼를 하고 있는 듯한 무용수가 출현하고 있어서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이 이미지들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들의 출처는 다양하다. 즉 작가는 인터넷, 신문기사 등에서 특정한 사건을 지시하는 것들을 수집하여 화면 속에 새로운 사건으로 재배치하고 있다.

이샛별_통합자 the unifier_캔버스에 유채_160×210cm_2010

이때 특정한 사건이란 비인간적인 폭력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사건의 맥락이 박탈당한 채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화면은 서로 상관없는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조합에 의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괴함(uncanny)의 형식으로 돌출되고 있으며 더욱이 연극적이면서 마술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 복잡함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한 곳에 머물지 못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은 화면의 여기저기를 불안하게 훑어내리며 마치 보물찾기 하듯 그가 걸어놓은 이야기구조를 찾아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흘러내리는 젤라틴 혹은 살덩어리로서 이것은 달리(Salvador Dali)의 끈적끈적한 해면체를 연상시킨다.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서로 상관없이 조합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보며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자동기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현실에 실재했던 사건을 재배치한 것이란 점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작품에서 작가는 연행 또는 불법적으로 납치되고 있는 사람들의 뒤켠에서 이 사건을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뒤의 창을 통해 젤라틴덩어리들이 삐져나오고 화면의 윗부분에 드리워진 커튼은 이 작품의 연극적 특징을 고양시킨다. 이 작품에서 사건을 증언할 목격자로서 주체는 화면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다. 주체가 있었던 혹은 있었어야 할 자리를 미끌미끌한 액체가 마치 꿈의 한 단락처럼 점유하고 있다. 이 미끈거리는 액체를 향해 화생방 전쟁이나 실험실 혹은 오염된 지역을 세척하려는 마냥 특수장비를 착용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는데 정작 젤상태에 가까운 물질 위에는 유령처럼 하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한 여성이 침몰하고 있고 또 다른 여성은 고무튜브 위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낙하하고 있는 미사일은 이 미끈거리는 중간상태의 물질이 위험지대임을 암시한다. 붉은 색의 끈적끈적한 덩어리와 푸른색의 미끌미끌한 액체도 고체도 아닌 물질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현실이라기보다 꿈, 그것도 악몽에 가까운 것이다. 화면의 위로부터 드리워진 커튼이 내려오는 순간 이 낯설고 불안한 연극도 끝나겠지만 작가의 놀란 시선은 파국적 대단원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의 놀란 시선은 주체가 빠져나가버린 상태를 드러낸다. 그는 사건의 관찰자가 아니라 그 대상으로부터 전면적으로 노출돼 있다.

이샛별_공백 void_캔버스에 유채_112.1×162.2cm_2010

여기서 다시 라캉의 언어를 빌자면 그의 작품은 주체의 시선과 대상의 응시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 즉 주체의 분열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익숙하면서 낯선 이미지, 예컨대 핵폭발이 만들어내는 버섯구름, 꽃이 되어버린 머리, 녹아내리는 신체는 모두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기이한 이미지들은 그의 내면에 잠재한 공포의 원형이 시각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본래 허상인 상상계나 공포의 원인을 지각할 수 있는 상징계도 아닌 중간지대를 나타낸다. 현실의 폭력이 너무도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동그랗게 뜬 눈의 동공에 그 현실의 정보를 담지 못하고 은유, 비약, 왜곡, 상징의 방법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으므로 화면 속의 주체는 불가능의 영역인 실재계 곧 죽음이나 무의식으로 회구하려는 욕망을 지닌 존재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의 화면은 주체의 시선이 미끄러지는 장소에서 대상의 응시가 전면으로 부상하는 공간이며, 주체의 공포는 흘러내리는 젤라틴 덩어리에 의해 비등한다. 이 흘러내리는 물질은 그의 신체의 외연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공포가 육화된 것이자 또한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충동질하는 폭력성을 은폐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저널리즘 등을 통해 수집한 현실의 공포가 너무도 가공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주체가 그것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관찰하기를 거부한 그 시점에서 사건의 진상을 바라보려는 욕망도 좌절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는 복잡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의 조합이란 방법을 통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이샛별_소거 elimination_캔버스에 유채_210×160cm_2010

서양의 가짜왕 놀이에서 주인공은 정해진 기간에 실제 왕에 필적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사회적 소수자, 약자로서의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한다. 따라서 그가 전제적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현실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화면 속의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에서 바깥 세계를 바라보며 놀라고 있는 작가가 겪고 있는 불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자본주의가 걸어놓은 주술이자 최면인 물질만능주의, 경제우위의 논리가 폭발한 이후의 폐허를 암시하는 터널 너머에 있는 세계로 진입하고 싶지만 가짜현실이 제공하는 유혹이 강하기 때문에 차안(此岸)에 주저앉아 흘러내리는 살덩어리를 집어삼키는 주체가 열망하는 것은 연극의 끝이 아니라 지속이다. 즉 그는 자신이 대상에 의해 응시당하고 있음을 지속시킴으로써 자신이 현실의 폭력에 경악하고 공포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아가 페르소나(persona)도 아니고 더욱이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신경증환자도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흘러내리는 살은 그의 신체의 연장이자 그가 느끼는 격심한 공포이기도 하므로 그것을 뱉어내거나 집어삼키는 원초적 행위는 잃어버린 낙원, 곧 유아기의 행복한 요람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 최태만

이샛별_분리 separation_캔버스에 유채_90.9×72.7cm_2010





흘러내리는 살

최태만/미술평론가

이샛별의 작품 속에는 두 개의 자아가 존재한다. 하나는 파티용품점에서 구입한 토끼나 여우가면을
쓴 모습으로, 다른 것은 아니무스(animus)를 연상시키는 중성적 존재로서의 자아이다. 이 둘은 거의
대부분 푸른색의 트레이닝 복장을 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두 개의 자아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주체와 작가의 무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괴물이자 충동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의미하는 도플갱어(Doppelganger)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같은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도플갱어는 사실 심리적인 분열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징후라고 할 수는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인간의 인격을 선과 악이란 이분법적인 범주로만 규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라캉의 언어를
빌리자면 상상계의 부분인 자아(ego)와 상징계의 부분인 주체(subject)가 서로 충돌하는 장소로서
신체를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완전한 인격이란 사실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인간의
내면에서 작동하는 다중인격이 그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할 뿐만 아니라 삶을 드라마틱하게 만드는
요인일 경우도 많다. 따라서 이샛별의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는 두 자아는 그가 지닌 많은 자아를
대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면을 쓴 자아는 표정을 감추고 있으나 무언가에 놀란 듯 동그랗게
눈을 뜨고 있는 자화상과 쌍을 이루며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놀란 자아가 바라보는
세상은 한마디로 서사적 구조를 지니지 않는 요지경이자 난장판이며 혼란의 도가니이다. 예컨대
서양에서 크리스마스와 같은 축제동안 난장이, 불구자 등의 사회적 소수자들이 정해진 기간에
왕노릇을 하는 풍습으로부터 착안한 작품을 보면 전면에 토끼가면을 쓴 자아가 무릎을 꿇고 있고
맞은편에는 무언가를 집어삼키거나 혹은 뱉어내고 있는 자화상이 나타나고 있다. 화면은 그가
뱉어내고 있는 끈적끈적한 물질에 의해 두 개로 나눠진다. 이 물질은 현실이란 신체 속에서 급격하게
세포분열하며 성장하고 있는 암덩어리, 혼돈과 불안의 잉여물, 역겹도록 꿈틀거리며 증식하고 있는
괴물로서 화면 위를 스멀스멀 점유하고 있다. 연극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조명을 받고 있는 자화상
뒤로는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그에 대응하여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루이14세를 연상시키는 기마상이 역시 젤라틴덩어리처럼 흘러내리는 형상으로
재현돼 있다. 녹색 잔디와 가지가 앙상한 나무는 화면 중앙에 뚫린 터널과도 같은 구조물에 의해
불길함을 고조시키지만 그 가운데 느닷없이 스트립쇼를 하고 있는 듯한 무용수가 출현하고 있어서 이
작품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지 종잡을 수 없는 지경이다. 이 이미지들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들의
출처는 다양하다. 즉 작가는 인터넷, 신문기사 등에서 특정한 사건을 지시하는 것들을 수집하여 화면
속에 새로운 사건으로 재배치하고 있다. 이때 특정한 사건이란 비인간적인 폭력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사건의 맥락이 박탈당한 채 제시되고 있기 때문에 복잡한 화면은 서로 상관없는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조합에 의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기괴함(uncanny)의 형식으로
돌출되고 있으며 더욱이 연극적이면서 마술적인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 복잡함은 보는 사람의
시선을 한 곳에 머물지 못하게 만든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은 화면의 여기저기를 불안하게
훑어내리며 마치 보물찾기 하듯 그가 걸어놓은 이야기구조를 찾아야만 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흘러내리는 젤라틴 혹은 살덩어리로서 이것은 달리(Salvador Dali)의 끈적끈적한 해면체를
연상시킨다.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서로 상관없이 조합된 것이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보며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depaysement)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자동기술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현실에 실재했던 사건을 재배치한 것이란 점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작품에서 작가는 연행 또는 불법적으로 납치되고 있는 사람들의 뒤켠에서
이 사건을 놀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뒤의 창을 통해 젤라틴덩어리들이 삐져나오고 화면의
윗부분에 드리워진 커튼은 이 작품의 연극적 특징을 고양시킨다. 이 작품에서 사건을 증언할
목격자로서 주체는 화면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다. 주체가 있었던 혹은 있었어야 할 자리를
미끌미끌한 액체가 마치 꿈의 한 단락처럼 점유하고 있다. 이 미끈거리는 액체를 향해 화생방
전쟁이나 실험실 혹은 오염된 지역을 세척하려는 마냥 특수장비를 착용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는데 정작 젤상태에 가까운 물질 위에는 유령처럼 하얀 실루엣으로만 표현된 한 여성이
침몰하고 있고 또 다른 여성은 고무튜브 위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낙하하고 있는 미사일은 이
미끈거리는 중간상태의 물질이 위험지대임을 암시한다. 붉은 색의 끈적끈적한 덩어리와 푸른색의
미끌미끌한 액체도 고체도 아닌 물질이 만들어내는 세계는 현실이라기보다 꿈, 그것도 악몽에 가까운
것이다. 화면의 위로부터 드리워진 커튼이 내려오는 순간 이 낯설고 불안한 연극도 끝나겠지만
작가의 놀란 시선은 파국적 대단원을 지연시키고 있다. 그의 놀란 시선은 주체가 빠져나가버린
상태를 드러낸다. 그는 사건의 관찰자가 아니라 그 대상으로부터 전면적으로 노출돼 있다. 여기서
다시 라캉의 언어를 빌자면 그의 작품은 주체의 시선과 대상의 응시가 일치하지 않는 상태, 즉 주체의
분열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는 익숙하면서 낯선 이미지, 예컨대 핵폭발이 만들어내는
버섯구름, 꽃이 되어버린 머리, 녹아내리는 신체는 모두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이 기이한
이미지들은 그의 내면에 잠재한 공포의 원형이 시각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본래 허상인 상상계나 공포의 원인을 지각할 수 있는 상징계도 아닌 중간지대를 나타낸다. 현실의
폭력이 너무도 두려운 것이기 때문에 동그랗게 뜬 눈의 동공에 그 현실의 정보를 담지 못하고 은유,
비약, 왜곡, 상징의 방법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으므로 화면 속의 주체는 불가능의 영역인 실재계 곧
죽음이나 무의식으로 회구하려는 욕망을 지닌 존재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의 화면은 주체의
시선이 미끄러지는 장소에서 대상의 응시가 전면으로 부상하는 공간이며, 주체의 공포는 흘러내리는
젤라틴 덩어리에 의해 비등한다. 이 흘러내리는 물질은 그의 신체의 외연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공포가 육화된 것이자 또한 작가 자신의 내면에서 충동질하는 폭력성을 은폐하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저널리즘 등을 통해 수집한 현실의 공포가 너무도 가공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주체가 그것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관찰하기를 거부한 그 시점에서 사건의 진상을 바라보려는
욕망도 좌절할 수밖에 없으므로 그는 복잡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의 조합이란 방법을 통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여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서양의 가짜왕 놀이에서
주인공은 정해진 기간에 실제 왕에 필적하는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사회적 소수자, 약자로서의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한다. 따라서 그가 전제적
왕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현실은 가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화면 속의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화면 속에서 바깥 세계를 바라보며 놀라고 있는 작가가 겪고 있는 불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마치 자본주의가 걸어놓은 주술이자 최면인 물질만능주의, 경제우위의 논리가 폭발한 이후의
폐허를 암시하는 터널 너머에 있는 세계로 진입하고 싶지만 가짜현실이 제공하는 유혹이 강하기
때문에 차안(此岸)에 주저앉아 흘러내리는 살덩어리를 집어삼키는 주체가 열망하는 것은 연극의 끝이
아니라 지속이다. 즉 그는 자신이 대상에 의해 응시당하고 있음을 지속시킴으로써 자신이 현실의
폭력에 경악하고 공포에 시달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은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아가 페르소나(persona)도 아니고 더욱이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신경증환자도 아니란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흘러내리는 살은 그의 신체의 연장이자 그가 느끼는 격심한
공포이기도 하므로 그것을 뱉어내거나 집어삼키는 원초적 행위는 잃어버린 낙원, 곧 유아기의 행복한
요람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의 표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
Cascading Flesh

By Choi Tae-man

There are dual egos present in Li Set-byul’s work. One wears fox or rabbit masks, the type that
bought in party stores, while the other has a sort of androgynous appeal that is seemingly
associated to animus. It is notable that two of them wear blue colored tracksuits. The dual ego
symbolizes volatile monsters or impulsive egos within subjects as societal beings, as well as
the artist, as a visual embodiment of the doppelganger (a German word meaning ‘the ghostly
double of a living person’.) The doppelganger, which may be familiar to us through literature or
films such as Dr. Jekyll and Mr. Hyde, is not seen only in split mind and personalities that find
hard to distinguish between the good and the bad. Borrowing terms from Jacques Lacan, it also
represents a body, a place where the imaginary ego collide with the symbolic subject. A
perfectly balanced personality is an almost impossible reality, and instead one’s identity is
composed of multiple personalities, their various shades rendering life dramatic. Therefore the
dual egos in Li’s work can be said to represent several of her own egos. Egos wearing masks
hide their facial expressions, but keep observing the world in a pair of the self-portraits, with
their big round eyes making them appear startled. The world seen by the startled egos is a kind
of kaleidoscope, a web of confusion, with no clear sense of logical development. For instance,
in a work inspired by a Western custom in which socially underprivileged people such as dwarfs
and the handicapped are, for a time, allowed to play the role of kings during festivals like
Christmas, the rabbit ego is depicted sitting on its knees, while a self-portrait figure swallows or
spitting something on the other side. The canvas is divided into two by a sticky matter that she
is spitting. This matter crawls around the scene like a cancerous cyst that keeps growing
through rapid cell division, with a residue of confusion and shakiness, and a grossly proliferating
monster. The self-portrait is under a spotlight like an actor on a theatrical stage, and behind her
a group of people are depicted brandishing a brutal power, while the sticky lump has flowed into
the shape of an equestrian statue resembling Marcus Aurelius or Louis XIV. Greenish lawns and
bare trees heighten the gloomy foreboding that comes from empty tunnel-like structure in the
center, while a dancer appears to be in the middle of a strip show, leading the viewer to a sense
of confusion about its meaning. Where did these images come from? They have a variety of
sources. The artist collects certain types of articles from the Internet, newspaper and other
media and rearranges them into a new scene on the canvas. The types of issues chosen are
concerned with inhumane violence. As each image is presented devoid of its context, when the
unrelated images are composed into a complex scene they create an uncanny feeling which is
familiar and at the same time strange, bringing together dramatic and magical situations. This
complexity means the viewer is unable to focus on a single point for a prolonged time. They
look uneasily here and there across the canvas, as if caught in a maze while looking for the
underlying narrative. What draws our attention here is the gelatin or fat lump flowing through,
reminiscent of Salvador Dali’s sticky sponges. The irrelevance of the fragmented images is
suggestive of Surrealism’s depaysement. However as Li rearranges what actually happened in
reality instead of depicting them by automatism, she seems closer to notions of Magical
Realism. In another work, Li takes a surprising look at an event in which people appear to be
hauled away or kidnapped. Curtains hung in the upper part of the painting reinforce the theatrical
characteristics of this work, in which the gelatin lumps are being squeezed out the window
behind. A subject, as witness of this incident, is being shoved backwards at the edge of the
canvas. The place for the subject, the place where it is should be, is occupied by the slimy fluid,
as if part of a dream. A group of people walks toward the fluid, fully armed with the kind of
special equipment that might be used for CBR warfare, or in a laboratory or a polluted area.
However a woman is seen enjoying playing with water on a rubber tube, while another woman is
depicted with only ghost ?like white silhouette dives. A falling missile suggests that the slimy
fluid, which is an uncertain state, neither liquid nor solid, poses a danger. The reddish sticky
lump and bluish matter creates an unrealistic dreamworld, a sort of nightmare. The moment the
curtain falls, this unfamiliar and uneasy play will end, but the perplexed look of the artist delays a
catastrophic finale. The perplexity reveals the state found when the subject is displaced. The
artist is not an observer of events?rather she is completely exposed by the objects. To use
notions from Lacan again here, Li’s work reveals the division within a subject, the state where a
subject’s perspective and objects’ gaze are incongruous. Familiar yet strange images appearing
in Li’s work: For instance the mushroom cloud of a nuclear explosion, a head turning into a
flower, and a melting body are all associations with death, visual expressions of an archetype of
fear hidden inside her. They belong to a middle area which is neither the imaginary of something
unreal, nor the symbolic of perceptions of fear. The violence of reality is too frightening to be
incorporated within those big round eyes, therefore the subject appears as a being with desire
to return to the real, a realm of impossibility such as death or the unconscious with the help of
metaphor, irrelevant development, distortion, and symbol. Li’s canvas is a space where an
object’s gaze emerges as the subject’s perspective slips, and the subject’s fear is drawn to the
surface by the flowing gelatin lump. The dripping matter’s role is to hide the impulsive violence in
the inner being of the artist, as well as as a reincarnation of fear. The terror of the real that has
been gathered out of the realm of journalism brings up such a formidable fear, and the subject
already resists looking straight at it, she has to yield to the desire to find truth in the events.
Therefore she confesses that she is being seen instead of seeing through the combination of
grotesque images. In the play of Lord of Misrule from the West, the hero can command power
similar that of an actual king, during a certain period. After the period passes however, he or
she needs to live the rest of their lives as society’s downtrodden. The reality is that they only
have fake authority as King. This seems related to the uneasiness felt by the artist, who is more
startled looking at the outside world than they are looking at the scene on canvas. Because of
the strong temptations offered by fake reality, she swallows the flowing flesh lump oozing down
onto the floor, despite her desire to jump into the world that exists beyond the tunnel, which
suggests ruins after an explosion of devastating materialism. The subject passionately wants
the play to be continued, never to end. In other words, she seems to say that she is appalled
by the violence in reality, and troubled with fear, showing that she is continuously gazed upon
by objects. This shows that the ego in Li’s work is neither her persona nor a hysteric
possessed with narcissism. As the flowing flesh is an extension of her body, and an extreme
fear she feels, the primitive act of swallowing or spitting is seen as a release of the desire to
return to a lost paradise, or the happy cradle of infancy.

Choi Tae-man is an art critic







Standing at a Corner

By Jeong Hyeok-hyeon

Here are a few paintings. They are hung on the wall, exposing themselves without any hesitation in a
space that has been perfectly designed for them. As can be seen from the resume in her catalogue, they
are painted by a widely recognized artist who has participated in several solo shows and has been
featured in a number of invited exhibitions. Due to the unique experience of the exhibition and the artist’s
career, there seems to be something that is compelling us to feel some emotion and perceive something
in front of these paintings. It seems to be saying, “I’ve got something you should feel or recognize.
Guess what it is?” There is an uncertain truth suggested by the paintings. This imposing presence or
indecent disclosure of a painting might be a way of proving that it has objet petit a, or its own truth.


When Alain Badiou, known as ‘a philosopher of event’, compared the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philosophy to “the relationship between a hysteric and their master”, borrowing terms from Jacques
Lacan, he pointed out the embarrassment that a viewer might feel when standing in front of a painting.
The hysteric is neither confined within a mental hospital nor bound to medication for treatment. Rather,
she is someone who asks, “tell me who I am”, of somebody playing the role of the Other. This cunning
mentality knows that there can be no clear answer from the master, who is playing the role of the Other
with the real authority. In other words, the she keeps asking for a new answer, repeating “that is not what I
want” to the master telling, “this is your truth.” The master, who thinks it is possible to answer, is
fascinated by the tenacity of her dogged requests. Therefore, he makes with the ideal partner for the
hysteric. The hysteric’s desires are not concerned with its own truth, but with the master’s desire for her.
These days, instead of seeking truth, art secretly tears because of this corruption of desiring the master.
Sometimes, this elegant mark of some tears may turn a painting into a costly commodity.


But we need to remind ourselves that the truth does not exist in a painting in order to escape the bad
infinite of corruption and desire, or to save painting from the Other. Therefore, a painting’s aura is not a
light that radiates from truth. This argument is not intended to suggest a regression to post-modernism,
and its suggestion that no truths exist. As much as viewers are captivated by the ‘infinity’ that disturbs
the ecology of human-animal, the truth lies in front of us now. But for this desire for ‘infinity’, there might
be neither paintings nor viewers. Therefore, the appreciation of a painting begins by asking what the very
viewer standing in front of on other than these paintings has to do with the truth.


‘Another scene’ is the theme that runs throughout works of Li Set-byul. This ‘another scene’ is a
Freudian notion, referring to unconsciousness. Sigmund Freud suggested that dreams, slips of the
tongue, and jokes are among the moments when these another scenes, as a non-temporal locus, take
place. Within these situations we experience cracks between consciousness and perception. The
unimaginable occurs, disguised as reality in dreams; a misspoken phrase might lead to a totally
unexpected meaning due to its distorted words; whilst jokes can come from a deviation from the usual
usage of words. Freud sees the moments of these another scenes as critical, because the unconscious
is an archive of repressed, denied or foreclosed truths. The unconscious disturbs the self-recognition of
consciousness or self-identity, by revealing one’s own true being in these momentary cracks between
consciousness and perception. First, we can say that Li attempts to explore these areas through the
theme of ‘another scene’. Earlier works by Li questioned symbolic identity, capturing these cracks in
consciousness and perception. The figures appearing on the canvas began to shake (View from the
Bottom, 2008) and sometimes they broke in two, as seen from the juxtaposition of figures and bunny girl,
or figures, flower-persons (The Real, 2009). It is possible to see Li’s painting exploration as being led by
the triad in Lacanian psychoanalysis. Li’s painting is inherently rooted in the dynamics of human
mentality, in which the imaginary, the symbolic, and the real are linked to one another like Borromean
Rings. Discontinuity can reveal the ways in which the imaginary-symbolic-real triad are connected. When
the muscular boxer who is showing us his back takes his eyes off the bunny girl, he begins to see the
real running from his consciousness. At this moment, the space shared by the triad turns into a singular
one, which has no attachment to the reality outside the window. Li’s interests in these cracks or break of
continuity are not merely concerned with an inner exploration?perhaps it is because the symbolic refers
to things that human beings are composed of, yet in Lacan’s definition of the symbolic order or the
Other, these things exist outside of them. In other words, it means humanized nature as social order.


It is from this perspective that ‘another scene’ should be understood. For example, Lord of Misrule,
which utilizes an accurate rendition of perspective, shows the direction that the trajectory of these works
takes. The ego ideal, such as the robots which occupy the entire scene in Staging of View from the
Bottom (2008), takes a central position in Lord of Misrule, but it doesn’t draw attention away from the
figures within the painting. A figure secreting some fluid appears as a subject of the real with a bunny girl
who seems to be an imaginary or ideal ego, their eyes looking beyond the painting through the open
canvas. In spite of its imposing presence with a halo-like light, the ego Ideal becomes very small at the
border that divides the canvas diagonally?between the black and white monotone of the upper right
section, and the exuberant colors of the lower left. Even though it hasn’t gained any colour yet, the fluid
which has been transformed into the concrete form of a horse rider, slowly moves beyond the crack
toward somewhere outside, where the split subject casts its gaze upon it. Lord of Misrule symbolically
shows that ‘another scene’ has developed a new phase that moves beyond the attempts to locate the
cracks in our symbolic identity. Perhaps it might be seen as the quest for a totally new life, and a world
which can be measured through the being which has been split into three parts. Li stands at a corner
where a trajectory turns its direction in a rush.


Therefore, we should not see Li’s ‘another scene’ as being like a landscape of the unconscious, as
something which doesn’t allow any access to its meaning or is merely for a play of the imagination. Even
Freud saw the significance of ‘another scene’ as being above that of the unconscious. There is an
unusual order within it. The way that things are connected within the unconscious is quite unlike that of
consciousness. Even if one remembers a dream vividly, we are unable to fully grasp its meaning. It is like
the way that we don’t understand why we often say ‘gyaenyeon’ (개년, meaning ‘bitch’) instead of the
word ‘gyaenyeom’ (개념, meaning ‘concept’) or why we think this ridiculous slip of the tongue is so
hilarious. The unconsciousness exists in relation to reality, yet at the same time constructs meanings in
a different way. Why is it like this? It is because the revelations of languages which are repressed, denied,
and foreclosed, languages which are almost impossible to deal with consciously, may lead to the
collapse of a reality which consists of linguistic symbols. Therefore, languages of the unconscious can’t
be expressed, let alone represented in paintings.


From this aspect, Li’s work challenges the limit of expression. ‘Another scene’ is concerned with painting
beyond paintings. This is probably the reason why these paintings have an open format, unlike her earlier
works.
While these previous paintings looked upon the viewer, alienating the viewers’ gaze, ‘another scene’
leads the figures to look towards a third place. For instance, An Instant Flash is notable because the
flash is not located within the painting. It radiates at an ambiguous site, whether an amusement park or a
factory, when the trio of the imaginary ego, the symbolic ego, and the real subject put their arms around
one another, or simultaneously look at a certain spot. Therefore, a shift in time occurs in this painting.
The period of time suggested by this painting is the “not yet” of Saint Paul, but when the “not yet” turns
into “already all the time,” along with the viewers, An Instant Flash takes place. What would happen if the
scene beyond this painting was shown? Then the painting would overflow with gross fluids. The time
difference or parallax view between the two scenes is almost like time difference between temporality and
eternity, and could never be incorporated within the same space. The scene uses a language that can’t
be grasped within the symbolic order. Therefore these fluids serve as signs that foretell that an incursion
of the real, or a moment of rupture, is approaching. The Red House 2 depicts a scene in which a radical
change of direction is about to occur. This is particularly noticeable in the way that the light being cast on
the figure comes from an entirely different space from what is around it. This also captures the instance
of a flash as well.


This kind of Messianic Kairos is envisioned in the work, Artist. In his miraculous article ‘Thesis on the
Philosophy of History’ Walter Benjamin analyses Paul Klee’s 1920 watercolor, Angelus Novus.

Where we perceive a chain of events, he sees one single catastrophe, which keeps piling wreckage upon
wreckage and hurls it in front of his feet. The angel would like to stay, awaken the dead, and make whole
what has been smashed. But a storm is blowing from Paradise ……

This catastrophe is the moment when the order of reality breaks. Benjamin sees progress merely as
something that has been developed within the organisation of reality. Li’s angel exists in the moment
when lightning sparks, resisting the storm of progress with frail wings. In this era where we recklessly
push for progress, the duty of an artist is to resist against advances that aren’t based in history, and to
reclaim a limitless explosive power by meticulous investigating the moment before lightning strikes.
Nevertheless, their wings are frail. That is probably why their expression reveals an element of
embarrassment along with its sense of awe and decision. Artist can also be read in conversation with The
Red House. This work reminds me of Kazimir Malevich’s Red House, because as well as having the same
title it also has the same kind of parallel lines running through the background. Li’s painting depicts
astonishment on the face of a figure who has run head long into existence. Unlike the angel in Artist, the
figure in the The Red House has their lips pursed tightly together, and they can’t avert their eyes despite
the shock of what’s being seen. This is probably a photo capturing a critical moment in Lee’s painting.
Badiou has suggested that there are four procedures for generating truth: love, politics, science, and art.
The practices that guarantee these four procedures can be enabled through a faithfulness in the
rupturing moment, or truth. Artist, The Red House, and The Red House 2 can be seen as proclamations
and confessions of faith, telling the artist what she needs to hold onto for her own sense of being.


Lacan stated that the unconscious is structured like language, thereby radically developing Freud’s
understanding of ‘another scene’ and the unconscious. Furthermore, he argued that unconsciousness is
a discourse concerning the Other. ‘Another scene’ does not exist separately from scenes of reality. The
Other, the place where languages are generated, is in itself a symbolic world. It is a world with an infinite
orbit, in which language needs another, and the desires of human beings look exactly like circuit diagrams
of language. As social animals, human beings are concerned with the notion that they are held captive
within the circuit of discourse. We desire the desire of the Other and try to obtain the ‘agalma’ as well as
the recognition of the Other. However, the Other’s Other doesn’t exist. In other words, there is no entity
which can guarantee the agalma of the Other. In the sense that the Other doesn’t have the agalma, he
doesn’t exist. When desire breaks through the fantasy and face with the absence of the Other, a
separation occurs.


Separation shows someone who has broken through the fantasy, blowing upon a fluid which seemingly
oozes out from his own body. She identifies herself with the fluid, a thing that does not exist in any
language. She is a subject who has faced nothingness. She is, however, far from being a pessimistic
one. This figure, who is depicted as being unusually vivid, instills her breath to the fluid, her nothingness.
For this reason, another title for Separation may be creatio ex nihilo or perhaps Absolute Freedom.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 (Genesis 2:7). From this phrase from the Bible, Man (Adama, earth) comes
from dust, in a similar way to how the uncertain fluid has made this entity. This painting feels like an icon
of the sublime, because the figure is active in the divine work of recreating itself. It is neither a blasphemy
nor a claiming the title to the Divinity. It is only when facing these absolute transformations, that one can
recognize the concrete meaning of sacredness.


In its essence, the unconscious is constructed in relation to the logic of reality, which we have to adapt
to ourselves in order to survive and gain recognition. However this language of the unconscious is based
not on language of signs as one of reality, but on language of signifiers. While signs are elements with
meaning, signifiers are elements not yet composing sense. Li’s determined exploration of ‘another
scene’?in which signs with meanings are deconstructed into to signifiers without meaning?is concerned
with her desire for a position beyond the limits of paintings to surpass a reality which has reached the
saturation point of production. The diversity of other forms of logic is rising up beyond the walls of reality,
which are now on the brink of collapsing. Her attempts to break things down are perhaps closer to a
passionately positive hope than expressions of pessimism or cynicism because the moment of rupture
and collapse will lead to the development of limitless flexibility.


These yearnings are what works such as Void, Elimination, Composition, Uplifted Matter, and The Unifier
intended to visualize. The act of gazing becomes an instance when the world turns into a void. The void
turns the channels of every gaze and discourse into a sleek space that has the universality, in that it
doesn’t exclude anything from this space. It is good to look more carefully at the backgrounds of Li’s
paintings, where we find buildings that look like shut-down factories. These places led the laborers to
become part of the proletariat. Some of them disappear from these places, and others return. When the
bunny girl perceives that her own face was a mask (Composition), and removes it (Elimination), subject
turns into another entity full of infinite possibilities (Composition). In Uplifter, the artist identifies herself
with the heroine in Delacroix’s Liberty Leading the People, on the verge of massive structural collapse
and change. The Unifier seems like a realization of these utopian illusions. This, apparently from the
greatest number of figures appearing in Li’s works, is an obvious result of an investigation into moments
of break and catastrophe. At this moment, figures from the past return, focused upon fulfilling what they
had failed to do, looking again, with a new perspective at the forces which led to their original failure. It is
a space full of new possibilities and yet at the same time with suspense, full of stark antagonism and
tension.


In the exhibition of ‘another scene’, Li stands at a corner. She proclaimed that this is the place for an
artist.
There is no better place. The moment when another scene begins to be seen, at the point where the
previous scene ends, serves as the best place for infinite creativity. She has found the position where
she was supposed to stand. What she needs to do now is more concerned with the subtlety of
sensation which helps her perceive this found place, and how to perceive properly and furthermore
visualize them technically. From here on, the innovation of her work depends on poignant artistic
investigations. The moment when all the things join together in the power of one is not wholly dependent
on the intention of the artist. Or in other words, paintings, in themselves, are far from revealing truth.
Nevertheless, art may be seen as a righteous truth, because it generates the event of truth’s effects.
The creation of the event is something philosophically unconditional and, theologically, it is God’s gift of
grace. You may have heard the old saying JinInSa DaeCheonMyeong (盡人事待天命, Wait for what God
has intended for your life, after doing what you can do as a human being). It may sound ironic, but when
one does what they can do, they will be above what God has intended for one’s life.
I pray for 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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