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9. 23:59ㆍShared Fantasy/Fashion
2010년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2를 통해 다소 민망하기까지 한 '큐트가이' 별칭을 얻었던 패션과 학생 윤춘호, 그는 4년 새에 아르케(Arche)를 포함해 총 세 개의 브랜드를 이끄는 책임자가 되었다. 서울컬렉션 2014 F/W 쇼를 2주 앞두고 스타일쉐어와 함께 아르케 쇼룸을 찾았다. 시끌벅적한 강남, 홍대가 어울릴 것 같은 쾌활한 디자이너 윤춘호지만 아르케 쇼룸은 조용한 북촌 언덕 꼭대기에 있어 꽤 의외였다. 24일 펼쳐질 F/W 쇼 이야기와 함께 하하호호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디자이너 윤춘호는 '홍대'보다 '북촌'이 더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솔직하다 못해 유쾌하기까지 한 윤춘호 이야기 들어보자.
오는 2014년 3월 24일 서울컬렉션에서 선보여질 2014 F/W 쇼 피스
Q) 평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시나요? 간단히 소개 부탁드릴게요.
‘디자이너 윤춘호 입니다’라고 하는데요. 일상에선 ‘디자이너’ 표현도 잘 안 쓰는 거 같아요.
Q) 수상 경력이 화려하세요. 요즘 같은 취업 대란에 창업도 좋지만 이런 경력이라면 안정적인 직장인이 됐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제 단독 브랜드를 선보일만한 꿈은 크게 없었어요. 사실 학교에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남들처럼 좋은 기업가서 승진을 하고 경력이 되면 그 이후에나 한번 생각해봤을 텐데요. 프런코(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를 나가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같이 나왔던 다른 디자이너들이 모두 개인 브랜드를 시작하는 거에요. 처음에는 분위기에 휩쓸린 것도 있어요. 불가능할 만큼 큰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개인이 브랜드를 만들고 작게 시작하는 환경이 형성된 거 같아요.
Q) 그럼 기업에도 들어갈 생각이 있으셨군요?
네. 그런 생각도 있었어요. 이상봉 선생님을 뵙고부터는 기업 브랜드보다 컬렉션 쪽에 더 관심 갖게 됐어요. 계기가 된 거 같아요.
Q)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나 꼭 자신만의 브랜드를 하고 싶었던 큰 이유가 있나요?
딱히 큰 이유 같은 건 없었어요. (웃음) 단기적으로 봤을 때는 ‘쇼를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도 있었고 길게 봤을 때는 여성복을 하는 남자 디자이너로써 자리를 잡고 싶었어요. 기성보다 조금은 다른 여성복을 해보고 싶었어요.
아르케 쇼룸에 진열되어 있던 2014 S/S 시즌 피스
Q) 밀라노 마랑고니에서 유학 생활을 하신 걸로 알아요. 패션 커리큘럼에 있어 우리나라와 밀라노 비교해보면 어떨까요? 각 도시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나 유학 생활 동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우리나라 학교도 대부분 교수님들이 해외 유학파이신 분들이 많아서 크게 ‘외국과 다르다’ 이런 건 없는 거 같아요. 제 자신을 보면 한국에서는 조금 자유분방했어요. 외국에서는 명확한 기준 이랄까요. 불필요한 실루엣, 디테일 등을 최소화하고 교수님들이 명확하게 지적해주시기 때문에 제 자신이 과제 하나를 하더라도 더 준비해 갔던 거 같아요. 욕심이 생겨서요. 잘하고 싶어서. 제가 배웠던 10년 전 그 시절에는 한국에서 아방가르드하고 좀 난해한 디자인이 칭찬받았는데 외국에서는 반대로 깔끔한 게 칭찬받더라고요. 지금은 물론 또 다르지만요.
Q) 오히려 반대일 거 같았는데요. 그럼 마랑고니는 비교적 깔끔하고 상업적인 디자인이었던가요?
지금은 한국이 더 상업적인 거 같아요. 예전에는 학생들 배우는 스타일이 그랬어요.
Q) 군입대 전과 후 그리고 프런코 때까지도 이상봉 선생님과의 연이 깊은 걸로 알아요. 선생님께 배운 가장 큰 게 있다면?
남자 디자이너여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드레스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있어요. 실제로 지금의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드레스를 하기가 쉽지 않죠. 이상봉 선생님은 파리에서 계속 쇼를 하세요. 선생님은 드레스 안에 입는 뷔스티에 하나 하나까지 전부 직접 만드세요. 그런 걸 보면서 배웠어요.
Q) 이상봉 선생님 스타일의 영향도 받았을까요?
저는 스스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주변 분들이 살짝 묻어 나온다고 말씀해주신 분들도 있었어요. 선생님 스타일은 아무래도 쇼에 오르는 디자인이시고 저는 조금 심플하고 웨어러블한 거 같아요.
Q) 아르케 이야기를 해볼게요. 그리스어로 ‘시초, 처음’이라는 의미던데 어떻게 짓게 됐나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별 다른 의미는 없어요. (웃음) 다들 의미를 부여하고 심오하게 지으시더라고요. 저는 쉽게 지었어요.
Q) 무척 솔직하세요. 번외 질문인데 프런코에서 모습 그대로세요. 실제 성격과 같나요?
(웃음) 왜곡된 부분도 없지 않아요. 생각이 없고 철 없는 학생 같은? 인격형성이 덜 된 듯한 느낌?그 때는 솔직히 어렸어요. 물론 실제와도 크게 다르진 않아요. 그 때보다는 지금 많이 다른 거 같고요. 지금은 공개적인 곳에서 그 때처럼 떳떳하게 이야기 잘 안해요.
Q) 아르케의 주 컨셉이라던가 추구하는 이미지는 어떤 건가요?
어떤 브랜드에서는 주 이미지를 고집하시잖아요. 저는 딱히 그렇지 않아요. 트렌드에도 발 맞추며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요. 매 시즌 새롭고 재미있는 컨셉으로 진행해보고 싶어요.
Q) 남성복이 아닌 여성복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만약 남성복을 한다면?
제가 애초부터 패션을 할 때 ‘남성복 디자이너가 돼야지, 여성복 돼야지’ 같은 건 없었어요. 수능, 입시에 맞춰 아무 정보도 없이 패션 디자인학과를 갔는데 가서 자연스럽게 된 거 같아요. 당시 커리큘럼에 남성복이 딱히 없었어요. 자연스레 여성복만 했죠. 근데 저는 쇼에 남성복 몇 착장 더하긴 해요. 앞으로도 계속 남성복 조금씩 선보일 거 같아요.
그리스 신전을 연상케 했던 2014 S/S 시즌 피스
Q) 지난 시즌, 2014 S/S 데뷔 컬렉션 어땠나요? 데뷔 무대인데 후에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막 성공적이지는 않았어요. 점수가 딱히 있는 게 아니어서 성공이라고 하기는 조금 그렇고 확실히 한 번의 쇼였지만 생각했던 반응 이상이었던 거 같아요. 쇼 끝나고 현장에서는 무척 조용했거든요. 아무렇지 않게 집에 와서 ‘첫 번째 쇼’에 대한 감흥이 전혀 없었어요. 그냥 ‘일 끝났다’ 정도였어요. 가끔 sns에 올라오는 거 보고 ‘쇼 했었구나’ 정도였어요.
Q) 저는 첫 번째 쇼임에도 불구하고 반응이 굉장했다고 느꼈거든요.
그 이후에 차차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스타일리스트, 연예인 분들이 찾아주시면서 더욱 그렇게 됐어요. 정작 쇼 장에서는 조용했거든요. 어떤 분들은 ‘무난하다’ 라는 반응도 있어서 예상치 못했어요. 그 이후에 반응이라 저도 놀라웠어요. 쇼 마치고서 해외 바이어 두 업체에 오더를 받았어요. 비즈니스로나 마케팅으로나 저 자신은 10점 만점에 10점 만족한 쇼였어요. 이후 반응 때문이죠.
Q) 두 번째 컬렉션을 2주 정도 남기고 있는 예고를 좀 부탁 드려요. 컨셉이나 이미지가 있다면?
어릴 적 봤던 만화, 애니메이션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어요. 이번 시즌 뮤즈가 ‘마리 앙투와네트’에요. 직접적인 컨셉은 아니지만 제 스스로 해석하기에는 그래요. 파스텔 톤 핑크나 블랙이 쓰여서요.
Q) 아르케(Arche), 아르케 레브(Arche Reve), 토(Toe)는 각기 어떻게 다른가요?
토는 제가 처음 만든 브랜드에요. 그리고서 아르케와 아르케 레브를 디렉팅하게 됐어요.
Q) 어떻게 다른가요?
(웃음) 브랜드 이름이 달라요. (웃음) 추구하는 이미지가 다른 거 같아요. 토는 제가 처음 런칭해서 해외에 계속 수출하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아르케와 아르케 레브를 선보이고 있고요. 토는 국내 시장보다 해외에 집중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토는 국내 시장과 맞지 않나봐요. (웃음)
Q) 앞으로 아르케가 꼭 지켜나가고 싶은 것이 있나요? 신념이나 이미지 같은…
유치할 수도 있는데 저는 항상 ‘예쁜 옷’을 만들고 싶어요. 물론 디자이너로써 아무 철학 없이 하는 건 아니지만 대단한 철학이나 의미부여보다 보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미적 기준이 크게 다르진 않은 거 같아요. 힘들고 어려운 옷보다 재미있고 쉬운 옷이 좋아요.
Q) 사람 윤춘호에 대해 이야기 나눠 볼게요. 디자이너 아닌 사람 윤춘호는 어떤가요?
저는 놀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Q) 어? 정말요? (웃음)
많은 사람들이 제 인상보고 그렇게들 생각하시는데 저는 술도 한잔 못 마셔요. 음주가무에 약해요. 처음 만나는 분들은 저의 이미지 때문인지 오해들 하시는데 제가 낯을 조금 가려요.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라… 사회생활에 할 때는 좋지 않더라고요. 싫어도 웃고 좋아도 웃고 해야 되는데 싫으면 싫은 티가 나요. 그래도 요즘은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거 같아요. 사회인이 되어 가는? (웃음) 아직도 부족한 게 많아요. 사람 만나는 면에 있어서. 주변 사람들은 다들 잘하는 줄 아세요. 클럽 같은 데도 가끔 친구들에 끌려 한 번씩 가요.
Q) 평소 작업 아니면 뭘 하면서 시간 보내시나요?
옷 만드는 게 하루의 전부인 거 같아요. 요즘에는 쇼 준비나 이것저것 때문에 무척 바빠서 다른 거 할 겨를이 없어요. 쇼를 마치고 나면 다시 제가 뭘 하면서 살았나 돌이켜 볼 거 같은데… 평소에는 친구들 만나요. 밥 먹고 건전하게…
Q) 좋아하는 패션 디자이너나 스타일이 있다면?
음… (웃음) 음................
Q) 해외, 국내 상관 없이요. (웃음)
아! 요즘에 있어요. 영감이라기 보다… 남성복 문수권의 권문수씨요. 실제로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얼마 전 모 매체 촬영 때문에 뵙고 이후로 연락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캔들 홀더, 아르케 쇼룸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Q) 주로 영감은 어디에서 얻나요?
아… 애매하다. 모든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아요. 저는 일상에서요. TV를 보다가, 책을 보다가도 받는 거 같아요. 시각적인 데서 많이 받아요. 음악을 들으며 영감을 얻는 건 아직 아닌 거 같아요. 고정적으로 보는 잡지나 책도 없고요. 자연스레 접하는 일상의 것들에서요.
Q) 패션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떤 직업을 가졌을까요?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거 같아요. 저는 원래 고등학교 때 이과였고 공대 준비했었어요. 근데 수능에서 실패했어요. (웃음) 공대 입시를 실패하고 평소 하고 싶었던 미술학원을 바로 끊었어요. 예전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레 진로를 바꾼 거 같아요.
Q) 진로를 정말 잘 정하셨어요. 공대 가셨으면 지금 전혀 다른…
거의 ‘신의 한 수’ 였어요. 미대에 가겠다고 미술학원을 끊은 건…
Q) 앳된 이미지 때문에 ‘이제는’ 좋으실 거 같아요. 프런코에서도 그렇고 살짝 개구쟁이 같은 이미지이신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반반이에요. 프런코 때보다도 지금 늙었죠. 지금은 관리 받아요. (폭소) 안 늙으려고…
Q) (폭소) 아.. 관리를 받으시는군요.
이제 받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는 많이 늙었어요. 몇 년 사이에 힘들어서 폭삭 늙었어요.
Q) 앳된 이미지가 시간이 흐를수록 좋은 거잖아요.
근데 프런코 이후에 금방 사라졌어요. 30대 이후에… 장단점이 있어요. 디자이너가 나이 들어 보여서 좋은 건 아니어서… 물론 연예인처럼 뽈록뽈록하게 유지하겠다는 건 아니고 평범하게 정리 정도만… (웃음)
Q) 다른 매체 인터뷰에서 예전의 프런코 이미지가 걱정된다고 하셨어요. 혹시 신경 쓰셔서…
(웃음) 아니요. 제가 지금 며칠 고되게 해서 피곤해 가지고… 다른 촬영장 가더라도 무게잡고 그런 거 못해요. 제 자체가 무게가 없어서… (웃음)
Q) 오늘 인터뷰가 정말 재미있어요. 유쾌하고요. 어느 인터뷰에서나 디자이너 선생님들과의 거리감이 있는데 친근해요.
글쎄요. 제가 한 번밖에 안 해서 그런가 봐요. 5, 6번 하면 좀 건방져지려나… (웃음)
Q) 앞으로 아르케도 그렇고 윤춘호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까요? 그리는 미래상이나 목표가 있다면?
아르케가 국내든 해외든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인지도면에서. 인정받고 싶어요. 제가 5, 60대가 되어서도 디자인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것도 해보고 싶어요. 디자인 외의 장르에서… 드라마 작가 같은? (웃음)
Q ) 평소에도 드라마 구상 하시나요?
친구들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긴 해요.
Q) 디자이너님이 5, 60대가 되셔도 아르케는 계속 진행되어야 하잖아요.
그랬으면 좋겠죠. 지금은 디자이너가 욕심 내서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하지만 그 때 되면 여유있게 좀 내려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편안한 조명과 레드가 포인트 컬러로 쓰인 아르케 쇼룸
그리스 신전이 연상될 만큼 화려하게 꾸며졌던 아르케의 2014 S/S, 첫 번째 시즌이라 더욱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었다. 그 두 번째 2014 F/W가 오는 3월 24일 5시 30분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막을 올린다. 지난 S/S 여름 분위기 물씬 풍기는 그리스 신전이었다면 이번에는 푸근한 파스텔 톤과 우아한 블랙이 어우러진 '베르사유의 궁전' 그 자체를 만나볼 수 있다. 어디서도 미리 만나볼 수 없엇던 아르케 두 번째 시즌 피스를 살짝 공개한다.
'The Rose of Versailles(베르사유의 장미)' 타이포가 적힌 블랙 탑.
올 한해 가장 사랑받을 컬러, 레디언트 오키드와 핑크. 아르케는 베르사유 궁전의 우아함을 핑크로 표현했다.
네오프랜과 가죽으로 표현된 핑크, 가죽 위에 수 놓인 스티치가 인상적이다.
핑크 피스보다 더 다양한 디자인으로 구성된 화이트 피스
화이트 피스 소매에 달린 플라워 데코
그 어떤 인터뷰보다 유쾌하고 즐거웠던 디자이너 윤춘호 그리고 사람 윤춘호와의 인터뷰. 준비한 질문 외에도 30분이 넘게 재미있는 여담을 주고 받았다. TV를 통해 만났던 뿔테 안경 윤춘호는 '싫으면 싫다' 당차게 말하던 학생이었다. 어느덧 윤춘호는 서울컬렉션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며 ‘싫어도 웃어야 하는’ 사회인이 되었지만 덕분에 우리는 프런코 때와 또 다른 ‘아르케 디자이너’ 윤춘호를 만나고 있다.
지난 시즌 혜성같이 등장한 아르케와 아르케 레브는 현재 패션계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혜성으로 등장해 닿을 수 없는 별이 된 스타도 많지만 프런코부터 ‘예쁜 옷’ 아르케까지 친숙한 스타는 대중에게 더욱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사람 윤춘호와 아르케, 앞으로 친근한 스타가 되기에 충분하다. 쇼를 2주 가량 앞두고 고군분투하느라 엉망인 컨디션에도 진실되고 성의껏 응해준 윤춘호에게 감사의 말 전한다.
글, 사진 : 임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