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3. 22:35ㆍShared Fantasy/Culture
나는 트위터 경력으로 치면 나름 터줏대감 급이다. 언 3년 동안 (굳이) 쉬지 않고 해 온 터라 여태까지의 이슈거리는 트위터를 통해 접한 경우가 잦다. 뿐 더러 재미있는 사람들도 트위터를 통해 여럿 만났다. 세상에는 존경할 만큼 똑똑한 사람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애매한 사람도, 기가 막히게 웃긴 사람도 넘쳐난다는 걸 트위터를 통해 배웠다. 그중에서 가수 단편선은 이해는 하지만 애매한 사람 중의 하나다. 단편선과 교류는 없었다. 말 몇 마디 섞어본 적 없는 사이지만, 나는 꾸준히 오랫동안 트위터를 통해 그를 지켜봤다. (사람 대 사람으로) 그는 기똥차게 재밌는 사람이다. 그리고 또 진지하다. 그는 지난 2012년 아홉 곡이 담긴 정규 앨범 <백년>을 발표하고 현재 EP 앨범 <처녀>를 갓 선보인 싱어송라이터이며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함께 연주하는 생계형포크노동자연합 '회기동 단편선'이다. (네이버 뮤직 아티스트 소개 그대로) 정말 이해는 되지만 애매하다.
지난 정규 1집 <백년> 이후 이렇다 할 활동 결과물이 없어 스스로 부끄럼을 느꼈고, 작업에 대한 필요성으로 5월 말 음반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는 단편선. 5월 말의 불씨가 6월 말에 보도자료를 보내올 만큼 엄청난 속도로 완성됐다는 자체도 신기할 따름이다. 그의 폭주적인 추진력을 가늠해 볼 수 있겠다. 그는 '퀄리티 있는 결과물'이 되기 위해선 좋은 친구와 좋은 작업자를 언급했고 <처녀> 결과물 역시다.
여기 보이는 이 난감한 사진들은 단편선과 6월 2일 비싼트로피 레코즈의 누군가가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조광사진관, 암사생태공원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그리고 녹음은 6월 11일부터 은평구 6호선 세절역 부근에 있는 좆밥합주실에서 이루어졌다. 모든 악기의 연주 역시 단편선이 진두지휘했으며 5곡의 음원이 완성된 건 6월 20일이었다. 초반 단편선은 음반으로 낼 취지가 아니었으나 이 사진들과 앨범 커버 디자인 퀄리티가 꽤 나왔을뿐더러 데모가 될 줄 알았던 음원이 꽤 정상 퀄리티에 가깝고 플레이타임 역시 만족할 정도라 결론적으로는 EP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덧붙여 음악만큼은 앞의 과정과 같은 퀄리티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의 넓은 배포에 나는 23일 발매된 EP <처녀>를 들으며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귀와 손 그리고 머리가 단편선 <처녀>로 하나 된 상태다. 실로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와는 몇 마디 나눠본 적이 없어 그의 취향을 이렇다 하며 정의할 심산도, 자격도, 요량도 없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이런 사진들을 접한 혹자들의 생각이 곧 나의 생각이라 하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생각과 느낌도. 그의 음악과 취향이 이러한 사진들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편식 없이 다양한 문화를 소비하는 주체로써 이것을 이해하고 습득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낀다. 나는 이것들을 접하면서 너무 뻔하고 우스울 정도의 '컬쳐 쇼크'를 경험했다. 강도의 가늠 없이 일단은 충격으로 와 닿았다. 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던가. 귀의 중독이 무서운 거라고. 그의 EP <처녀> 5곡을 쉬지 않고 듣고 있다. 이 사진들? 그러려니 한다.
칼같이 뱉어보면, 혹자는 이런 비주얼을 무기로 '가수'라는 탈을 쓰지 않았나 충분히 그럴싸하게 비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공인이 좇고 전문가가 인정한 분명 싱어송라이터다. 게다가 첫 번째 정규 음반 <백년>으로 '한겨레'에서 음악평론가 32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이런 장난 같은 비쥬얼 작업은 음악으로서의 실력이 받치고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깨닫게 해준다. 무튼 그의 새로운 EP <처녀>는 진정성 있는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처녀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비주얼 작업까지 선보였다. 그의 트위터(@danpyunsun) 팔로우와 더불어 <처녀> 음원은 가수 단편선을 이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보조 장치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는 7월 5일 그가 EP <처녀> 발매를 기념하여 문래동에 있는 재미공작소에서 쇼케이스를 가진다. 이번 쇼케이스는 '회기동 단편선 2013 S/S 시즌 팬미팅'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데 명쾌하게 이해는 불가능하다. '2013 S/S 시즌에 단편선이 팬과 만나는 자리를 갖는다' 그렇구나. 그리고 이번 앨범 작업을 함께한 비싼트로피 레코즈의 대표이자 사진가 박정근의 촬영회 '나도 오늘은 처녀총각'도 함께 진행된다. 부산의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왕성한 활동을 보인 펑크 록커 겸 발라드 가수 김일두의 축하 공연도 진행될 예정이다. 그는 이날 쇼케이스를 위해 2007년 처음 발매된 데모에서부터 2012년 정규 1집 <백년> 그리고 몇몇 커버곡을 선별해 특별한 셋리스트를 준비했으며, <처녀>에 실린 모든 곡을 라이브로 선보인다. 이날 그가 앨범 커버 비주얼을 재연한다면 다시 한번 단편선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 될 것이다.
글 : 임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