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 15:34ㆍShared Fantasy/Culture
나는 그림을 그리는 미대생도, 디자인 하는 디자이너도, 미술에 집착하는 아트 콜렉터도 아니다. 소비라는 사고적 활동을 시작하면서(12살 때 즈음) 가족과 함께 갔던 영화관은 나에게 팝콘 냄새, 화려한 조명, 무척 큰 스크린 그리고 영화 포스터(리플렛) 같은 깊은 인상을 주었다. 유일한 문화생활 중 일환으로 쉼 없이 영화관에 들락거렸지만 12살, 특히 그때를 기억한다.
나의 몹쓸 수거활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여러 글에서 언급했던 나의 집착 아닌 집착 수거병은 잡지, 책, 리플렛, 팜플렛 그리고 영화 포스터까지 모으는 몹쓸 병이다. 처음 챙겼던 영화 포스터는 2002년 개봉한 영화 <품행제로>. 어린 나이라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포스터가 예뻐 챙겼던 기억이 난다. 영화관에 들르면 누구나 그렇듯(?) 제대로 읽지도 않으면서 괜스레 영화마다 한 장씩 챙겼던 것 같다. 가방에 넣어 집에 오면 고스란히 나의 스크랩 통으로 직행했다.
이후 나는 영화 포스터뿐만 아니라 길을 지나다가 눈에 들어오는 포스터만 보이면 떼어다가 화통(미대생 '간지' 부리겠다며 이유 없이 구매한)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홍대에 살 적에는 평일에도 동네 벽이 모두 포스터로 도배되는 광경을 보며 벅차게 감격했다. 몇 시간 뒤에 그곳을 다시 지나면 또 새로운 포스터가 붙어 있으니 나로서는 황홀한 거리일 수밖에. 아직도 화통, 포스터 통에는 각종 공연, 전시 포스터가 잔뜩 말아져 들어있다. 비단 나 뿐 더러 많은 이들이 공감할 거라 생각된다. 잡지나 책은 모르겠지만, 누구나 어렸을 적 한 번씩 방에 포스터 붙여보지 않았는가. 나와 같은 이들을 위한 <언포스터>를 소개한다.
<월간예술>에서는 포스터를 '도시에서 또 하나의 회화'라고 언급헀다. 이제는 상업적인 광고 그 이상의 의미로 우리 생활에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 대중 예술의 한 분야로 회화, 일러스트, 그래픽디자인, 타이포그래피, 패션분야의 패브릭 패턴까지 광범위한 미술 분야를 아우르는 매력적인 오브제다.
일반적으로 벽에 부착되었던 점에서 포스터는 순수회화 작품들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지만, 순수회화는 길거리가 아닌 전시회장 혹은 개인의 공간에서 주로 걸렸고, 반대로 포스터는 사람들이 되도록 많이 다니는 길거리와 같은 공공장소에 걸리곤 했다. 순수회화는 개인 혹은 단체가 오래도록 소장하지만, 포스터는 대부분 일회용으로 광고하는 내용이 속해진 기간이 끝나면 떼어내 버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순수회화는 말 그대로 순수 예술이며 포스터는 상업 예술에 속해있고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나 단체들의 목적을 위해 제작된다.
언포스터는 한국의 젊은 일러스트레이터,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선정하여 포스터의 형태로 제작하여 선보이는 갤러리 샵이다. 상업 아티스트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그들의 작품을 단지 감상하고 끝나는 것이 아닌 영구적으로 소장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동시에 아티스트에게도 작품이 경제성을 띈다면 지금보다 더 활발한 교류가 생기지 않을까. 방 안, 거실, 작업실, 아이들의 방 어느 한 곳에 감각적인 그림과 그래픽으로 채워지는 것을 상상하며 누구나 좀 더 쉽고 편하게 아트 콜렉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언포스터가 만들어졌다.
더 좋은 아티스트와 함께 좋은 아트 콜렉터가 만날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라는 언포스터는 단순한 프린트샵이 아니다. 재능있는 신진 아티스트의 작품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 위해 언제나 준비하고 있으며, 기존에 활발하게 활동 중인 상업 아티스트에게도 새로운 작업에 대한 동기부여와 자극이 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고자 한다.
1개월 혹은 2, 3개월의 홍보를 위해 그려지거나 디자인된 상업 아티스트의 작품들이 광고되거나 혹은 기사의 한 부분이 되어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버려지는 게 아깝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는 언포스터. 금새 사라지고 버려지는 포스터의 존재는 언포스터와 내 생각처럼 정말 아쉽기 그지없다. 나는 현재도 웹에서 접하는 인상 깊은 포스터들을 이미지 파일로 끊임없이 스크랩하고 있다. 개인적인 수집에 불과하지만 언포스터의 시작은 이런 사소한 생각에서 실제로의 실행까지 누구도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행하는 멋진 프로젝트라고 생각된다.
오손도손 모여 출판단지를 이루고 있는 경기도 파주시 헤이리 예술마을의 언포스터 오프라인 샵은 내리쬐는 햇볕과 청량한 하늘을 여과 없이 그대로 만끽할 수 있는 통유리 건물에 아티스트의 포스터와 함께 다양한 잡지, 책들을 만나볼 수 있다.
평일 및 주말 AM 11:00-PM 5:00, 공휴일, 월요일 CLOSED
주소: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헤이리 예술마을 1652-15, 1F.
(헤이리 예술마을 5번 출구 방향)
글 : 임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