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 TRIBE 펍 트라이브

2013. 4. 22. 20:20Shared Fantasy/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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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 6번 출구로 나와 상수 방향으로 걸어 내려오다 보면 소위 요즘 잘 나가는 합정 카페 골목 중간 어디쯤에서 머스크향 그윽한 펍 트라이브(Tribe)를 만날 수 있다. 조용했던 합정동이 ‘카페 골목’ 이라는 타이틀로 부산스럽고 시끄럽게 변하기 까지는 채 1, 2년도 걸리지 않았다. 이 골목은 고작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홍대 끝자락에 위치해 조용하고 한산한 골목에 불과했다. 빠른 속도로 퍼진 홍대 상권은 합정동의 조용한 골목에까지 손을 뻗쳤고, 이 골목은 더 이상 ‘조용하다’는 수사와 어울리지 않는 동네가 되었다. 






홍대를 경험한 지 15년이 된 후크님은 합정동이 시끄러운 동네로 변하기 전인 2008년, 지하에 위치한 이 공간을 얻었다. 후크님은 1998년부터 14년째 타고 있는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드슨을 계기로 직접 조끼, 벨트, 가방, 파우치 등을 만드는 가죽 공예를 하고 계신다. 트라이브의 시작은 후크님의 가죽 작업을 위한 조용한 작업실이었다. 





할리 데이비드슨을 계기로 가죽 공예에 빠진 후크님은 이 공간을 펍으로 개조하기 전, 이 곳에서 오직 매니아 할리 데이비드슨 라이더들을 위한 가죽 작업을 해오셨다. 트라이브가 할리 데이비드슨, 가죽 문화와 어울리는 사연도 여기에 있다. 브랜드가 아니면 큰 돈을 투자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잘못된 소비 문화 그리고 정작 좋은 제품은 가격 거품이 심한 것 등 여러 가지 이유들로 할리 데이비드슨을 타며 가죽을 시작하게 된 후크님의 생각과 그만의 감성이 이 트라이브 전체에 녹아있다. 가죽을 시작한지 6년이 지났고 그 시간 반인 3년 동안의 결과물들은 이 공간에서 탄생했다. 


트라이브에 첫 발을 들였을 때도 이제는 펍을 위해 협소해진 작업 공간에서 어김없이 가죽을 만지고 계셨다. 펍과는 별개로 독립된 공간이라며 선을 긋 듯, 또 다른 작은 공간과 나뉘어 있었다. 후크님의 가죽 작업에 있어서도 펍과는 또 다른 아늑함이 필요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두 공간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은 아니었다. 촬영 중 8명 이상의 단체 손님이 발을 들였고, 4인까지 앉을 수 있는 기존 테이블 외에 큰 테이블이 필요했다. 후크님은 자연스럽게 파티션 안 쪽 작업 공간을 내주었다. 별다른 망설임은 없었다. 심지어 손님들은 트라이브 밖 공간보다 훨씬 아늑하고 편안한 작업 공간을 더 선호했다.








트라이브는 매일 개장과 동시에 음악이 공존한다. 트라이브에 우연히 발 들인 사람 마저 떠나지 못하게 잡는, 그런 누구나 마음으로 들을 법한 음악 말이다. 후크님은 트라이브 운영에 관한 이야기 중 다른 것도 아닌 음악에 말을 늘이셨다. 트라이브 에서는 특히 블루스를 자주 들을 수 있다. 후크님은 치중된 음악 색깔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플레이리스트에 블루스와 같은 차분한 음악이 전부인건 사실이다. 조용하고 편안한 음악들이 주를 이루다 보니 올드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정성 있는 음악들을 선별한 것이니 특히 더 마음에 울리는 거라 생각된다. 대부분의 가게들은 대중 가요만 선보이지만, 그것을 원치 않는 일부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일부를 위한 상업적인 가게는 오래 버티기 힘들지만, 트라이브가 손님으로 꽉 차지 않아도 후크님의 운영 철학을 이해할 만한 마니아들이 찾아주기 때문에 더 큰 욕심이 없다.






후크님과 떼놓을래야 떼놓을 수 없는 오토바이 할리 데이비드슨의 이야기가 있다. 오토바이와 관련해 후크님의 운영 철학 중 새삼스러운 점이 있었다. “할리 데이비드슨 라이더들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좋겠어요.” 무슨 말일까? 할리 데이비드슨을 타는 본인이 그 라이더들의 발걸음은 원치 않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충분히 그럴싸한 이유였다. 할리 데이비드슨을 타는 라이더의 이미지가 워낙 왜곡으로 점철된 흔한 이미지처럼 문신, 마초, 소란스러움, 소음 등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후크님 당신 또한 라이더 임을 잊은 발언은 아니었다. 라이더끼리 모이게 되면 워낙 소음도 많을뿐더러 여러 친구들이 한 곳에 동시에 모이다 보니 후크님의 또 다른 운영철학 중 음악을 들으러 오는 손님들이 제대로 편안함을 느끼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신 스스로 라이더로서의 만남은 자신이 운영하는 트라이브가 아닌 다른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트라이브를 평온하게 찾아주는 손님들을 위해 자신의 일상, 관심사, 심지어 트라이브를 만들게 한 산실 중 하나인 할리 데이비드슨과의 상관관계를 놓아버린 것이다. 오로지 트라이브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 평안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 말이다. 





사진은 트라이브에서 접했던 리퀴르 류의 술, ABSENTE 압셍트.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고흐를 비롯한 예술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던 악마의 술 압셍트는 환각 작용으로 인하여 당시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고 한다. 1990년대에 다시 합법화가 되었지만 이 술은 여전히 영혼과 예술을 맞바꾸는 악마 중개인 같은 의미로 통용되기도 한다.



늦은 저녁, 편안한 펍 트라이브는 입구에서 고양이 두 마리 달자와 달봉이가 손님을 맞는다. 인도, 태국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머스크향과 함께 주인 후크 님의 손길로 탄생한 멋스러운 가죽 제품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트라이브에 빠지는 편안한 음악이 있다. 가끔은 혼자 들려 맥주 한잔 마셔도 민망할 것 없는 이 편안한 펍 트라이브는 눈 깜짝할 새에 임대료가 오르는 합정동에 위치해 있다. 뚝심 있는 후크님의 운영 철학으로 2년을 무난하게 이겨냈다. 앞으로는 ‘이겨냈다’ 는 표현보다 ‘흘러 보냈다’ 라는 수사가 더 어울리는 홍대 터줏대감 역할의 멋진 펍이 되었으면 한다.  


글, 사진 : 임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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