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



할 일은 많은데 고요한 새벽, 딴생각만 한다. 인터뷰 옮기다 말고 멍하니 여름 제주도 생각, 겨울 오사카 생각 등등 그리고 고작 한 두 달, 아니구나 벌써 석 달이 지났구나. 학교에서 너희들과 마시던 막걸리니 맥주니 마지막 학교 축제까지. 벌써 추억이 되었다. 


바람에 자이브를 추던 내 스커트, 스무 살의 봄은 이전까지의 봄보다 무척 따스하고 행복했으며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때와 같이 긴 봄은 없었다. 린튼에서 별 의미 없는 단체 사진을 찍으며 하하 호호하던 우리는 이제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 갓 대학생이 되어 촌티 열심히 흩날리며 황금의 추억을 쌓던 우리는 벌써 20대 중반이 되었구나. 어제의 일이 3개월 씩이나 지났고 엊그제의 일이 3, 4년 전의 일이 되었어. 앞으로의 3개월 그리고 3, 4년 후에는 또 지금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다들 어떻게 지내니? 


혼자 맞은 4학년 1학기 개강 날, 교정은 신입생이며 재학생들로 들끓었지만 나에게는 차가운 바람만 느껴졌다.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오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나 혼자 독수리 상징탑처럼 멍하니 서 있는 기분이었어. 외로움이야 늘 달고 사는 짐이자 힘이지만 요즘 부쩍 교정이 더욱 넓게 느껴진다. 옆에 있을 때는 언제나 있어 주겠거니, 떠나는 날이야 정해져 있었지만 실감하지 못했는데 어느덧 정신 차려보니 나 혼자 린튼을 거닐고 있다. 


삶이 팍팍한 건 혼자여서 아니라고 스스로 위로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떤 의무감에라도 모여 같이 밥 한 끼 하던 스무 살, 그리고 고작 엊그제가 이렇게 다시 잡고 싶은 순간일 줄 고작 엊그제에는 상상이나 했을까. 앞으로 남은 10개월의 대학생활, 내 삶의 마지막 학교겠거니 싶어 혼자여도 꿋꿋이 봄 내음 맡아보고 신입생처럼 부지런히 강의동을 걷는다. 실패하는 사람들이 과거에 연연한다지만 나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 못지않게 지나온 이야기 역시 고귀한 보석처럼 가끔 꺼내 더듬어 본다. 그 보석을 함께 만들어 온 너희가 오늘 무척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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